줄거리를 살펴 보면, 오하이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육 년 동안 미진은 돈을 한 푼도 벌지 않았다. 미진의 어머니는 둘쨰 남편에게 작은 건물을 상속받았다. 매달 세입자에게서 받는 월세의 반을 딸에게 송금했다. 미진은 귀국한 이래 줄곧 서울 서남부의 중국인 거리에서 혼자 살았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제이미로부터 메일이 왔다. 그들은 오하이오에서 이 년 동안 함께 살았다. 제이미는 두 달 후 학회에 참석하러 도쿄를 방문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일정이 끝나고 서울로 그녀를 만나러 가도 괜찮을지 물었다. 미진은 2000년대에 주로 사용되던 덩치 큰 구형 소니 캠코더를 갖고 있었다. 미진은 가리봉동의 벌집을 답사하러 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고 시장통을 걸어가다가 시장 한가운데서 두 남자가 치고받으며 싸우는 것을 보고 카메라를 빼들었다. 그녀가 리코딩 버튼을 누를 새도 없이 멱살 잡힌 남자는 미진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중국어로 소리를 질렀고, 모두들 미진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거두었고, 지나가던 여자가 미진을 잽싸게 큰길가로 데리고 나왔다. 미진은 매일매일 리코딩 버튼을 누르고 하염없이 밖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지칠 때면 꿈에 나왔던 커다란 구렁이를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초조해질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중지를 검지 위에 포개어 행운을 빌었다. 미진은 제이미의 방문을 위해 푸석해진 머리카락에 유통기한이 다 된 마요네즈를 발랐고, 인터넷 쇼핑으로 바닥에 깔 만한 두툼한 이불을 새로 주문했고, 간단한 서울 투어 동선을 짜두었다. 그러나, 제이미는 학회가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급히 돌아가게 되었다고 짧은 세 줄의 메일로 알려왔다. 미진은 기분 내키는 대로 팔을 놀리다가 책상에 쌓여 있던 육 밀리 테이프들을 건드려 바닥으로 흩어졌다. 엉망이 된 방을 둘러본 미진은 일단 잠을 청한다.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하겠다고 생각하며. 라는 내용이다. 영화를 만드는 미진은 감독이지만 아직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어머니가 송금해 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간다. 가난한 미진에게 주변 사람들은 호의적이지만은 않고, 미진은 중국인 거리에서 매일매일 리코딩 버튼을 누르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한국에 방문해서 미진을 만나기로 했던 제이미는 학회가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급히 돌아가게 되었다는 메일을 보내고, 미진은 제멋대로 팔을 놀리다가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리고 방을 치우는 것을 미루고 잠을 청하며 내일은 다시 카메라를 들고 산책하겠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소설 끝 부분의, 카메라를 들고 내일 산책을 하며 내가 팔 수 있는 게 있는지 생각해보겠다고 했던 문장에서, 미진의 새로운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예술의 한계 같은 것, 그리고 현실 속에서 예술가가 살아가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머릿속에 장면들이 잘 그려졌고, 재밌게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