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꼬르따사르는 벌써 한 달째 토끼를 토하지 않았다. 재오는 수년간 일한 광고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후 나에게 함께 바를 운영하자고 했다. 예술과 학문, 지성인의 교류를 파는 일종의 살롱같은 그런 바를 운영하자고 하며. 나는 지도교수에게 받았던 홀리오 꼬르따사르의 단편집을 꺼내 재오에게 앙드레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글을 읽어주었다. 책장을 덮은 후 나이트가운을 입은 꼬르따사르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꼬르따사르는 토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었다. 꼬르따사르는 우리가 사는 낡은 빌라에 얹혀살았다. 꼬르따사르가 우리와 함께 지낸 지 한 달 반쯤 되었을 때 이미 토끼는 열한 마리로 불어난 후였다. 우리의 단골 포니테일은 토끼를 쓰다듬으며 사고싶다고 했으나 꼬리따사르는 토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판매를 거부했다. 나는 지도교수에게 학교를 그만둘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교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강사의 말에 의하면 지도교수는 정교수 임용에 탈락했다고 했다. 바에 도착했더니 꼬르따사르가 토끼를 팔기로 했다며 바구니에 담아서 들고 있었다. 하지만 토끼는 팔리지 않았다. 며칠 후 재오는 노란색 양복 한 벌을 들고 와 꼬르따사르에게 입혔다. 바에서 공연을 하자는 것이었다. ‘RABBIT SHOW’를 하자는 것이었다. 꼬리따사르는 쇼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결국 동의했다. 나는 토끼 머리 위로 핀 조명을 쏘았고 꼬르따사르는 손가락을 입 안 깊숙이 집어넣어 토끼 귀를 잡고, 그것을 천천히 끄집어 올리는 쇼를 했다. 래빗 쇼는 일주일에도 수차례씩 행해졌고, 결국 꼬르따사르는 침을 질질 흘리고 핏발이 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라리며 쇼를 무리해서 진행했다. 결국 마지막 쇼에서 꼬르따사르의 손바닥 위에는 곤죽이 된 토끼의 주검이 고요하게 늘어져 있었고, 꼬르따사르는 무대 위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꼬르따사르에게 다가가 그냥 토끼를 토하라고 했으나 꼬르따사르는 이미 늦은 일이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꼬르따사르의 빈 자리를 <페이퍼 래빗, 인문학 콘서트>가 채웠다. 시간강사가 입을 크게 벌리고 냅킨으로 접은 토끼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라는 내용이다. ‘래빗 쇼’라는 제목이 독특했고,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듯한 소설적 상상력과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 지도교수는 결국 정교수 임용에 탈락해 학교에서 퇴출당하며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꼬르따사르는 토끼를 토해내다가 결국 쓰러지게 되고, 토끼는 주검이 되어 고요하게 늘어져 있는 풍경. 그리고 ‘래빗 쇼’으 빈 자리를 시간강사가 인문학 콘서트로 채우는 부분까지 재밌게 읽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라는 질문 하나를 다시금 마음 속에 품게 되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욕망을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래빗 쇼를 강행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었던 것일까. 홀리오 꼬르따사르의 단편집의 이야기로 또 하나의 소설을 만들어 낸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