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단어만큼 마음 훈훈하면서 또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타인은 외면하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그럴 수가 없다. 가족이 주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지만, 또 그만큼 가족을 통해 얻는 마음의 안정과 사랑도 크다.
나에게 가족은, 내가 만든 가족이 아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만들어진 가족이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과의 인연을 중요시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때론 그 무게감이 버겁기도 했고, 때론 가족들 덕택에 편하기도 했고, 떄론 그 사랑이 너무 커서 행복하기도 했다.
이제 다 떠나고 아버지 한 분 남았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 팔순이 되신 아버지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실까 싶어, 두달동안 열심히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행복해하셨다. 날마다 눈 뜨면 출근해서, 자정이 다 되어 퇴근해서 들어오는 딸의 모습만 그림자처럼 바라보다가, 딸이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 좋으신 거다.
돈만 벌면서 살지 마. 라고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인생 선배로서, 아버지로서, 하신 말씀이었다.
5년 전 내가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 아버지는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5년동안 멀쩡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딸을 보시며,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5년 후, 내가 다시 재발했을 때, 아버지는 힘들어하시면서도,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하셨다. 꼭 치료받으라고 하시며.
가족이기 때문에, 나를 바라봐 주고 걱정해 주는 거고,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있고 싶은 게 아닐까.
나에게 이제 가족의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이제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혼자가 되었을 때, 타인이 또 다른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희망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또 다른 희망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 집착하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이제 끝나간다. 이제 더는 내가 뭘 해 줄 수도 없고, 이제 더는 집착할 가족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외롭지만은 않다는 걸, 나는 이미 지나온 삶을 통해 배웠다.
요즘은 일을 안 하니 편안하다. 마음도, 몸도 편해서, 가끔은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다. 나보다 더 여유있는 친구들은, 가정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사느라 바쁜데, 나는 한가하다. 이 한가함이 나는 좋다.
가끔 아버지께 미안해서 묻는다. 내가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그렇게 살았으면, 아버지가 더 행복했을까. 아니면 내가 아버지 옆에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신가. 하고.
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신다. 당연히 네가 내 옆에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지! 라고.
내가 옆에 하루종일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고 웃으시는 아버지는, 소주를 적당히 마시고 티비를 틀어놓고 주무신다. 이 단란한 행복이 조금 더 유지되면 좋겠다.
내가 힘들 때에도, 내가 행복할 때에도, 내가 고민이 있을 때에도, 내가 자신감에 넘쳤을 때에도, 내 옆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다. 때론 함께 웃어주시고, 때론 힘들어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시고,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시며 빙긋이 웃어주시는 아버지가, 내 옆에는 항상 계셨다.
가족.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나,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