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오후시간을 즐기고 있다. 뭔가 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며 음악을 듣고 있다.
독서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나는 너무 가볍게 읽는 것 같다. 독서를 많이 하면 쓸 게 많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너무 오래 책을 안 읽었기 때문일까. 내 일상을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열중하고 살았다.
피아노 음악을 듣고 있다. 곡은 익숙한데 제목은 잘 모르겠다. 음반을 사서 들은 기억은 거의 없고, 악보집을 보고 늘 내가 건반을 눌러봤던 기억만 있다. 피아노 음악은 그렇게 접하게 되었다.
소설강의를 듣고 있는데, 나는 거의 교양 수준으로 듣고 있다. 다 잊어버렸고, 사실 제대로 진지하게 공부해 본 기억도 별로 없어서, 갑작스레 강의를 등록하고 이제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인생 경험을 나름대로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왔을 뿐, 남들과 다른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지는 않다. 경험을 많이 해서 소설을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가로운 오후 시간.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다. 곁에 친지나 가족, 친구들이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은 결국 누구나 혼자이다.
소설강의를 석달 동안 들었다. 강의 횟수는 몇 번 안 되지만, 석달동안 소설에 대해 생각하며 살았다. 이십대 때 생각한 소설과 지금 생각하는 소설은 다른 것 같다. 이십대 때에는 소설이 곧 종교였고,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가볍게 2025년 신춘문예 등단작부터 2022년 등단작까지 읽은 후, 아주 약간 단편소설이란 어떤 거구나 하는 감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쓸 자신이 없다.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쓰는 게 소설이지만, 그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구도는 작가에게 달려 있다. 작가의 눈으로 사람과 삶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소설이 아닐까. 그 관점과 시각은 독특해야 하고, 낯설어야 한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다. 내 나이에 이제 더 이상 인생경험을 하겠다고 돌아다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이젠 사유를 통해, 독서를 통해, 어떻게든 써야 할 것 같다고. 아버지는 맞다고 하셨다.
중년의 나이도 이젠 지나가는 중이다. 친구들이 자식들 밥 해 줄 때, 나는 책을 읽고 있다. 밥 해 줄 대상이 아버지 밖에 없어서, 집안 살림에 있어서는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끝까지 나는 세상 편하게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가로운 오후 시간을 즐기며, 별의 별 잡다한 생각들을 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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