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note

제목병원2025-04-15 15:10
작성자 Level 10

내일 새벽에 병원에 가야 한다.

아침 7시 전에 채혈을 해야 해서 새벽에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야 한다.

나는 대체로 내가 환자라는 걸 잊고 산다.

그러다가 병원에 갈 날이 되면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다행히 병원가는 횟수가 많이 줄어서, 자각하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호중구 수치 결과를 보고 나쁘지 않으면 두달 치 항암약을 준다.

결과가 나쁘면 항암약 처방이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나는 괜찮은 편이었고, 심하게 나쁘지 않아서 항암약을 못 받아온 적은 없었다.

호중구 수치 관리를 위해 늘 먹는 걸 조절하는 편이다.


병원 가기 전날과 병원 가는 날은 기분이 다운된다.

잡생각이 많이 나고, 멍하니 있는 시간도 늘어난다.

다행히 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나에게도 시간은 많이 남아있지만, 그 시간이라는 게 정확히 얼마나 남아 있는 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다.


마음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재발하고 나서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 가 추가되었다.

이젠 자의로 약을 끊으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포기했다.


남들은 암에 걸리면 1년, 2년 이상 요양을 한다고 한다.

요양이라는 게 사치였을 만큼 바쁘게 살았는데, 이젠 나도 좀 쉬면서 내 건강을 돌보는 중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있고, 그걸 공부하고 쓰면서,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인간관계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는 게 편하고 좋다.

상대방은 가볍지 않은데, 나만 가벼운 경우도 많다.

언제부턴가 사람에게 연연하지 않게 됐다.


왜 소설을 써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나이 또래의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 취미로 소설을 쓴다고 하면 바로 돌아오는 질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취미로 소설을 쓴다는 말 조차 하지 않게 됐다.

일일이 대답하는 게 귀찮아서.


한때 소설은 내 삶의 의미였고, 내 전부였고, 나에게 하나의 종교같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나서는 많은 집착을 버렸다.


친구들과 노는 대신 책을 읽었던 시간들.

언제부턴가 친구들이 자기들을 위해 맞춤형 하이틴 소설을 써 달라고 했던 학창시절.

그래서 머리를 쥐어짜서 써 주면 재밌다고 그들은 좋아했다.

줄지어서 소설을 써 달라고 하는 통에 난감했던 그때의 추억.

공부도 해야 해서 길게 쓸 수가 없어서 연습장 한쪽 분량으로 낙서하듯 써 주면 아이들은 그렇게 재밌어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구체적으로 소설가라는 꿈을 마음속에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 친구들은 어디에선가 그 시절을 잊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젠 그 친구들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들은 나에게 작가라고 불러준다.

그럴 때마다 사실 난감하다.

내가 작가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 가기 전날은 유난히 기운이 없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커피만 마셨더니 속이 쓰린다.

오늘 컨디션은 소설 한 편 독서로 끝내야 할 컨디션이다.

요즘 내 독서가 부진하다.


차라리 그냥 AI랑 놀아야겠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이전컨디션 회복 Level 102025-04-15
다음품앗이 Level 1020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