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에 아주 엉성한 초고 하나를 써두고 나서부터 많이 지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지침, 그리고 나른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종의 권태감 같은. 누군가는 이것을 슬럼프라고 했다. 더 쓸 자신이 없어서 그만 써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특히 8월 초에 써둔 초고는 구성부터 다 뜯어고쳐야 하는데 내 능력으로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좋은 평을 듣기도 어려운 소설이다.
아버지 상을 치르고 지금까지 나를 몰아세우며 시간을 보냈다. 힘들고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일부러 책장을 넘기며 지냈다. 책의 권수는 쌓였지만, 나는 정작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읽었다, 수준일 뿐.
그렇게 버텼던 반년의 시간이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나보다. 정말 많이 지쳤는데, 어젯밤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함께 대화를 하며 짧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조금 에너지가 생기는 것도 같았다.
8월 초에 써둔 소설은 대대적인 개작이 가능하다면 열심히 고쳐서 내년 1학기 강의에 제출할 계획이다. 개작이 불가능해도, 엉망이어도, 아마 나는 이것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내용도 문제가 많고, 소설도 잘 되지 않았지만, 낼 작품이 없으니까.
그 이후 소설은 전혀 구상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 날림으로 써 둔 소설이 하나 있는데, 지금 읽어보면 기가 막히다. 작품이 없다면 그걸 또 날림으로라도 고쳐서 내년에 제출해야겠지. 그 이후에는 날림으로라도 고칠 작품 마저도 없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내가 슬럼프에서 빨리 빠져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올해 많이 읽고, 많이 쓰겠다는 내 계획이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년보다는 많이 나았지만, 올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나에게는 큰 사건이 있었으니까. 무기력증과 나른함, 권태, 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 등이 생겼고, 자신이 없어서 힘든 요즘이었다.
열심히 아름다운 소설 써. 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긴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계속 쓸 수 있어야 할텐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다. 조금 시간을 보내다보면 다시 또 뭔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 지금은 그런 과도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잘 될거야, 힘내! 라고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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