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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버지의 소변줄2025-08-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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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오늘부터 소변줄을 하신다.

이제 뺼 수 없는 소변줄이다.

사시는 동안은 쭉 해야 한다고 한다.

며칠 전 아버지와 둘이서 나주 여행을 하고 왔는데, 그게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다.

소변줄을 한 상태로 자동차 여행을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요양원보다는 집에서 있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에, 끝까지 내가 모실 생각이다.


반나절이상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는 길에 아버지의 머리를 깔끔하게 잘랐다.

아버지는 머리를 잘라서 젊어진 상태로 소변줄을 차고 침대에서 주무시고 있다.


아버지가 차고 싶어하지 않았던 소변줄이었다.

원래 차야 할 시간에서 일년 넘게 버틴 셈이다.

이젠 찰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왔다.

소변을 전혀 못 보게 될 거라고, 이젠 해야 한다고 해서 아버지를 달래서 소변줄을 채웠다.


혼자 남을 시간이 다가오는 걸까.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남으면 자유롭게 여행도 하고, 서울 시내를 버스 타고 돌아다니기도 할 거라고, 소설도 계속 쓸 거라고,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그래도 오래 사시라고, 이젠 술도 끊고 담배는 되도록 적게 피우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침대에 소변줄을 걸어둘 곳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빈 생수병에 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생수병의 입구에 소변줄을 걸어두었다.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찡했다.


오늘은 책도 못 읽고, 소설도 못 썼다.

당분간은 아버지에게 더 신경쓰며 지내야 할 것 같다.


소설을 좋아하고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인생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좀 더 나답게,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께는 끝까지 사랑하는 딸로 남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버지를 보살필 것이다.

아버지의 말년이 외롭지 않게 더 많이 신경써야겠다.


언젠가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써 달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을 잘 모른다.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는데, 알겠다고만 하시고 아직 말이 없으시다.


나에게 다시 소설을 쓰라고 하시더니, 이젠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

그래도 해병대 출신인 우리 아버지는 고통을 잘 표현하지 않으신다.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만큼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변줄 때문에 너무 감성적이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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