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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오랜만에 막걸리를 마시며2025-10-17 17:36
작성자 Level 10

오랜만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다.

흐린 날씨를 핑계삼아 오늘까지 놀아야겠다고 작정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막걸리와 샤인머스켓을 사오다가 관리소장님께 딱 걸렸다.

나한테 막걸리 있는데.

라시며 같이 마시지 않는 걸 서운해하셨지만, 나는 꿋꿋하게 혼자 집에 와서 혼자 마시고 있다.


이십대 때는 소설 쓰는 게 그저 재밌었는데, 이젠 소설 쓰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A4 4장 써 놓고 보름째 소설로부터 도망다니고 있다.

내일부터는 다시 이어서 써 봐야지.


학창시절에 친구들은 내가 가진 좋은 가정환경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늘 마음속에서 왠지모를 허전함과 외로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딸이라고 해서 차별하는 것도 없었고, 오히려 맏딸이라고 아들보다 더 챙겨주는 분위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부족한 뭔가를 마음에서 느꼈다.

그것을 문학과 독서에서 채웠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꽉 채워지는 마음의 풍요로움, 내가 쓴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읽고 반 친구들이 재밌다고 해줬을 때의 작은 행복감... 나는 그런 것들을 즐겼던 것 같다.


엄마의 목표는 나를 좋은 집안에 결혼시키는 것이었고, 나의 목표는 결혼을 떠나 혼자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것이었다.

떠밀리듯 한 결혼은 결국 실패로 끝났고, 나는 재혼을 택하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 살고 있다.

첫 결혼이 실패로 끝나자 부모님은 내가 다시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자유롭게 살라고 하시며 그제서야 나를 놓아주셨다.


늘 내 편이 되어 주셨던 아버지만 지금 내 곁에 있다.

늘 나를 간섭하며 나를 흔들어대던 엄마는 6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을 떠나시며 엄마는 나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다.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던 거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가 자식을 낳았다면 지금 그 아이가 이미 성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겠지.

나는 엄마가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철없게 산다.


사실 내가 가장 되고 싶어했던 것은 엄마였다.

하지만 신은 내가 가장 되고 싶어했던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니 엄마가 되기 싫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공허, 외로움, 고독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됐다.

혼자 있어도 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외롭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때는 청승맞아 보일텐데 나는 꽉 찬 마음의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

20~30대와 함께 사회생활을 오래 한 덕분에 그들의 감성을 느끼고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살아가게 된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지필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을 하게 됐다.

물론 신춘문예나 이름있는 문예지 등단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내 이야기를 소설로 허구화해서 하나의 소설을 썼고, 그게 이십 년만에 다시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디에서도 내가 먼저 소설가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내가 소설을 못 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부족한 실력의 여백을 공부를 하며 채워가기로 했다.


막걸리를 몇 잔 마셨더니 조금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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