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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버지와 함께 한 외출2025-11-18 17:18
작성자 Level 10

아버지를 모시고 소변줄을 교체하러 병원에 다녀왔다.

3주에 한 번쯤 소변줄을 교체한다.

조금 추운 날이었는데, 목도리와 장갑, 모자, 파카로 아버지를 중무장시키고 편도 30분 거리를 걸어서 다녀왔다.

아버지는 기분이 조금 나아지신 것 같다.

피곤하신지 주무시겠다고 해서 내 방에 와서 오늘 치의 독서를 몰아서 한꺼번에 해치웠다.


밤에는 잠을 못 잔다.

30분에 한 번씩 물을 달라고 하시고 담배를 달라고 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둘이서 날밤을 샌다.

아침에 잠깐 눈을 부치고 일어나 정오 무렵에야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이젠 뉴케어, 우유, 깨죽도 거부하시고, 뭘 드시려고 하질 않는다.

보리차라도 진하게 끓여 드려야 하나 고민중이다.


일한다는 핑계로 엄마의 마지막은 내가 책임지지 않았다.

요양병원비만 꼬박꼬박 입금했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아직은 괜찮으신 편이지만, 내년을 넘길 수 있을 지는 사실 장담할 수 없다.


추운 날 오랜만의 외출을 하신 아버지에게,

커피 마시고 갈까? 호빵 사먹고 갈까? 붕어빵 먹을래?

갖은 유혹을 다 했으나 아버지는 꿋꿋하게 집에 가자고 하셨다.

집이 편하신 거다.


오랜만에 페퍼민트차를 마시고 있다.

옆에 있어드리는 것 밖에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신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3세라는데, 아직 3년 남았는데...

3년만 더 사셨으면 좋겠다.


나도 아버지도 방콕하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부재중전화를 무시하고 살았더니 이젠 전화가 뜸해졌다.

한동안 내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인간관계가 귀찮아서 깡그리 정리하고 혼자 사는 요즘...

가끔은 이게 잘 하는 건가 싶기도 한데,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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