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녀왔다. 오늘은 종양내과 정기진료일이었다. 지난 주에 찍었던 CT 검사 결과, 아직 장기전이는 되지 않았고, 암세포는 그대로라고 했다. 계속 약을 먹으면 될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언젠가 약을 끊을 수 있나요? 아니면 계속 먹어야 하나요? 라고.
평생 먹어야 해요, 약 먹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죠? 의사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완치될 수 있는 건 아니죠? 라고 다시 물었다.
완치는 불가능해요. 약으로 암세포를 눌러두는 거예요. 라고 의사는 말했다. 계속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며.
아직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버티고 있지만, 몇 년 후에는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면 약을 바꾸게 될테고,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그렇게 약을 바꿔 먹다가 어느 순간 먹을 약이 없어지겠지.
고개를 끄덕인 후 진료실을 나왔다. 삶의 목표를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는 현재 즐기는 것으로 목표를 바꿔 살아야겠다 싶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약이 벌어준 내 소중한 시간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보고 있고, 공부도 하고 소설도 쓰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삶을 즐기고 있다.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면 상태는 더 빨리 나빠질테고, 현재로서는 일을 할만한 체력도 되지 않으니까.
잘 관리하면 몇 년은 잘 살 수 있을테고, 아주 잘 관리하면 십 년 정도는 시간이 생길까. 오늘은 문득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고, 의사도 나도 챗GPT도 말해줄 수 없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소설은 그냥 깊은 취미로 생각해야겠다고. 그리고 소설이 깊은 취미라 다행인 것 같다고.
친구는, 유병장수한다고 하며 나에게 주변에서 고지혈증 약을 평생 먹어야 하고, 혈압약을 평생 먹어야 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고지혈증과 혈압약과 항암약이 같지 않지만, 친구는 나름대로 나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거다.
마음 편하게 살아야겠다 싶다. 내 인생에서 그리 느긋하게 살아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조금 느긋하게 즐기며 살아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CT검사를 할 때마다 암세포가 더 커지지 않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고, 아직까지는 그대로 있어준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싶다.
오늘은 병원 진료를 기다리며 병원 안 카페에서 라떼와 핫초코를 마시며 웹북을 몇 개 읽었다. 분석하지는 않았고 가볍게 훑듯 읽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 편안했고, 좋았다.
나에게 소설을 이제 너무 무겁지 않게 가져가야겠다. 남은 시간동안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동반자같은 그런 도구로서 소설을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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