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초고를 써 두었던 엉망인 소설 한 편을 다시 끄집어냈다. 설명으로 가득한 이 소설을 어떻게 장면화해야 할지 난감했다. 오늘은 불필요한 부분들만 과감하게 삭제하고 일단 저장해두었다. 내가 원래 방식대로 전부 장면화하는 것은 이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서술기법을 살리되, 요약된 부분들 중 몇 가지를 특화시켜 장면화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잘 될지 모르겠다. 1년 전 소설을 다시 고친다는 게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소설을 이번 달에 수정해서 내년 1월 강의 때 제출할 생각이다.
나는 3개월 안에 구상과 초고와 수정까지 모두 끝내기에는 부담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많은데 작품은 제출해야 하니 심적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미리 써두는 편이다. 작품이 조금 쌓여 있어야 안심이 되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이번 달에 이 소설 수정을 잘 끝내면 내년 1월까지는 소설 제출 걱정은 없다. 그런데 이제 수정할 수 있는 소설도 없어서, 온전히 새로 써야 한다. 조금씩 끄적인 소설이 두 편 있는데, 앞 부분만 조금 끄적이다가 더 이상 못 쓰고 있다. 구상도 잘 되지 않고, 현재사건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소설이 잘 써졌는데, 아버지 장례식을 치른 이후 소설을 거의 못 쓰고 있다. 딱 한 편을 쓰고 나서 더 이상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울하고 슬펐던 기분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소설 구상이나 쓰기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신작을 써야 하는데 써지지 않아서 걱정이다.
지금까지 써 왔던 소설 방식으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동안 너무 많이 써 왔던 것이다. 상상과 가공이 더 많이 필요한데, 잘 되지 않고 그저 머릿속만 하얘진다. 이걸 넘겨야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걸 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많이 썼잖아. 친한 언니가 나를 위로했다. 재연 씨가 준 소설들이 집에 가득 쌓였어. 라면서.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언니만 바라보았다.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추상적으로 한 문장씩 뭔가 쓸 것을 끄적여보지만, 더 이상 부화되지 않는다.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지만, 아직 반년이 남아 있으니 뭔가를 쓰게 될 거라고 믿고 싶다.
멍하니 음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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