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언젠가 한번쯤은 소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이십대 때에도, 그 이후에도 내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십대가 되어 건강이 나빠지자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작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소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답답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소설이 잘 써질 때도 있고, 뭘 써야 할지 막막할 떄도 많은데, 그것과 상관없이 소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참 좋은 것 같다.
소설을 다시 공부하고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이 넓어졌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지고,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졌다. 그게 소설이 나에게 준 작은 선물이다.
다시 새 소설을 쓰고 싶은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독서만 조금씩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 짧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면서. 멍때리는 건 내 주특기인데, 멍때리면서 영감은 떠오르지 않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 경험을 너무 많이 써서인지 이젠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 써야 하나. 나의 한계인가 싶어서 고민도 했는데, 그럴수록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지만, 당분간 버틸 소설은 준비되어 있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천천히 생각하며 써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조금 변화를 주기 위해 다시 사람도 만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면 동네도 돌아다니려고 계획중이다.
소설이 나에게 등단이라는 선물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공부하고 쓰고 읽는 것 자체로 소설은 나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내 삶을 더 폭넓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고, 편협한 내가 좀 더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등 많은 선물을 준다. 소설을 써야 하니 세상을 관찰해야 하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부가적인 장점들도 있다.
나는 소설을 많이 좋아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소설을 좋아했고, 그 마음이 식었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읽고 쓰고 공부하는 내 삶이 좋다.
아버지가 안 계신 삶을 소설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잘 버티고 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소설은 아버지 대신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계셨을 떄에는 결과에도 욕심을 많이 부렸는데, 지금은 소설에 대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 굳이 급할 것도 없고, 결과에 연연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냥 지금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관챃하고,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자체로 행복하니까.
오늘 3학기 첫 강의를 듣고 소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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