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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2025-01-01 12:38
작성자 Level 10

- 어디선가 소의 목에 양철 피리를 쑤셔 넣은 듯한 소리로 닭이 울었다. 그러나 모래 구멍 속에는 거리도 방향도 없다. 그저, 밖에는 아이들이 길가에서 돌차기를 하며 놀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평소와 다름없는 세계가 있어, 때가 오면 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날이 밝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밥을 짓는 냄새에도 새벽빛이 섞여 있다.


- 땀을 흘리며 밀랍처럼 녹아 있었다. 털구멍이 땀에 젖어 있었다. 시계가 멎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구멍 밖은 낮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깊이 20미터의 이 구멍 속은 벌써 저녁이다.


-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 혐오에 빠진다.


- 기회는 저 멀리로 사라지고 말았다. 새삼스럽게 그런 가능성에 매달려 봐야 기대라는 자가 중독에 걸려 고통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누군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문을 비틀어 열고 힘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어떤 주저도 구실이 될 수 없다.


- 그러나 같은 왕복표라도 출발지가 다르면 목적지도 자연히 다른 법이다. 내게는 돌아오는 표인 것이 상대방에게는 가는 표일지라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

 

- 불편 듯, 새벽빛 슬픔이 북받친다.......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마을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 작품 링크 : 모래의 여자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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