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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설] 김성배, 국경의 밤 : 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2025-02-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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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계는 나아지고 있습니까?"

칸이 물었다. 나도 보안요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안의 음식 때문인지 어떤 감정 때문인지 칸의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한테 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는 듯 씹고 또 씹어 마침내 카레를 다 비웠다.


- "근데 당신은 국경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밖에 있습니까?"

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저도 당신들과 같은 한국인이란 말입니다!"

사내가 놀란 듯 의자를 밀며 물러섰다. 보안요원이 내 어깨를 잡고 의자에 앉혔다.


- 실종 다음 날에 칸은 사라졌던 것처럼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환풍기 배관을 교체하기 위해 천장 위에 올라갔던 설비팀 직원이 한쪽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보안요원들에 의해 붙잡히는 순간에도 칸은 담담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미칠 듯이 잠이 쏟아져서 누울 만한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칸이 그 좁은 공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활주로로 미끄러지던 여객기가 마침내 바퀴를 접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국경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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