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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깊은 밤2025-02-1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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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생각이 없는 밤.

날을 새려고 작정하며 음악을 듣고 있다.

이렇게 여유롭게 음악을 듣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올 봄에 수원에서 이사할 때 아버지가 많이 서운해하셨다.

그냥 수원에서 살면 안되느냐고 하시며.

오피스텔이 투룸에 복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피스텔 월세 감당이 어렵다고 하며 아버지에게 서울로 이사하자고 했고, 아버지는 마지못해 동의하셨다.


방 한칸에서 사는 게 다시 익숙해질 무렵, 내가 내 방을 얻게 되었다.

아버지가 내 방을 보시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없어서 심심하다고 하시면서도 아버지는, 딸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뭔가를 하는 게 좋으신가 보다.

혼자만의 생활에 아버지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오늘 아버지에게 나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내성적인 내가 사교성은 있어서 그래도 밥은 먹고 산다고 하며, 아버지가 잘 키워주신 덕분이라고 했더니, 좋아하셨다.


동생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해주셨던 우리 아버지.

아들보다 딸을 더 예뻐한다고 엄마에게 핀잔을 받으면서도, 아버지는 나를 그토록 예뻐하셨다.

공부 잘하는 아들보다 왜 평범한 나를 더 사랑했느냐고 아버지께 여쭤봤다.

그랬더니, 딸이니까, 라고 말씀하셨다.

딸이니까 예뻤다고.


아버지 덕택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힘들었던 때에도 아버지는 늘 나에게 에너지를 주셨다.

아버지의 연금을 쪼개서 나에게 용돈을 건네시며, 늘, 밥 거르지 말고 꼭 잘 챙겨 먹어, 라고 하시던 분.

아버지와 나는 가족이자 동지였던 것 같다.


아버지와 나는 가치관이 비슷하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나에게 계속 대화를 해주셨고, 그래서 내가 아버지의 가치관을 흡수하듯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깊은 밤.

나의 오십년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고 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아무 걱정 없이 세상 모르고 살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철없어서 문학을 꿈꿀 수 있었고,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


딸이 이혼했다고 구박하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하시던 우리 아버지.

아무 일도 없는 거라고 나를 안심시키며 달래시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다.

회사에 다니며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나의 모습대로,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고민하던 나에게, 아버지는 늦지 않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늘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


깊은 밤.

음악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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