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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동생의 기일2025-09-23 14:54
작성자 Level 10

내일이 동생의 기일, 오늘이 제삿날이다.

만 14년 전에 내 곁을 떠난 동생을 오늘 하루는 생각하고 그리워해도 될 것 같다.

작년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이젠 좀 잊고 싶은 마음도 들고,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해서이다.


햇수로 15년을 참 열심히 살았다.

동생 몫까지 살아야 해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반드시 열심히 사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기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것도 삶의 지혜라는 것을.


체제수단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아주 유치찬란한 소설이지만, 그리고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많아 문학성이 없는 편이지만,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썼다.


동생은 내가 소설을 좋아하고 소설을 쓰는 걸 이해했다.

왜 소설을 좋아하는지를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동생은 마치 다 안다는 듯 나에게 그런 포용적인 눈길을 보내곤 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긴 말도, 소설을 쓰라는 말이었다.

동생의 사업을 도와주며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나에게 늘 미안해했던 동생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났다.


이젠 동생의 얼굴이 희미하게 생각날 뿐이다.

사진 속의 동생은 35살이다.

나는 나이먹고 늙어가는데, 사진속의 동생은 여전히 젊고 청춘이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겪고 참 힘들었다.

누구에게 힘들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내 안으로 삭히는 과정이 때론 버겁기도 했다.

아들을 잃고 무너져 내린 부모님의 마음을 아는 나로서는 부모님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버텼다.

그리고 이젠 조금 홀가분해졌다.


동생은 나에게 소설을 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지만, 나는 소설을 쓴다는 게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정말 현실적으로 살았다.

한때는 종교였던 소설이, 한때는 전부였던 소설이, 그렇게 나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십년 넘는 시간이 지났고, 조금 편해지니 다시금 슬그머니 소설 생각이 났다.

20대 때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낙서하듯 조금씩 쓰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동생은 나에게 언제부턴가 무거운 존재가 되었다.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는 존재이다.

서서히 동생을 놓아주고 있다.

많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도 핏줄이라서인지 잊혀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이고, 사랑을 하는 존재라 특별하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유일한 특권이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가족을 사랑했고, 동생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젠 과거형이다.


이젠 내 시간들을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중년의 나이에 뭘 이룬다기 보다는, 편안하게 내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는 시간을 갖고 있다.

타인이 타인에게 들이대는 사회적 행복의 잣대에 나를 맞추는 것을 이젠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행복, 내가 느끼는 삶의 소중함, 내가 느끼는 가치들을 우선시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가 문학을 통해 배운 것이다.


나눌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가진 아주 사소한 것들을 세상과 나누며 내 삶을 끝까지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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