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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숙면과 불면 사이2026-02-10 23:53
작성자 Level 10

아버지는 숙면을 취하며 주무시고, 나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날을 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아버지가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할 때인 것 같다.

지금까지도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산다.

남들은 힘들게 왜 아버지를 간병하며 집에서 모시냐고, 요양원으로 모시라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는 요양원 안 보낸다. 내가 끝까지 모신다. 라고.

유대관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나는 엄마와 성격이 맞지 않았고, 아버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닮았다.

동생은 아버지의 좋은 머리를 닮았지만, 성격은 엄마와 비슷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부터 아버지는 그토록 나만 예뻐해 주셨다.

동생은 늘 조금쯤 질투를 하거나 뾰로통해 있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동생에게 장난감 선물을 안겨주었다.

동생은 물욕이 심했고, 나는 책 욕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늘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피아노를 치면 아버지는 옆에서 가곡을 불러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게만 사신 분이 아니다.

환경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혼자 고학을 하며 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경쟁률이 심했던 방송국에 공채시험을 통해 입사했고, 오랜 기간 보도부 기자로서, 임원으로서 일을 하시다가 퇴직하셨다.


나도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부유하게만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잠시 부유했던 시간이 있었을 뿐, 우리집은 지독하게 평범했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쏠리는 인생의 구간, 그 시간동안 내가 조금 여유있게 살았을 뿐이다.


인간을 많이 알게 되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런 주관적인 판단들을 나는 단 한 번도 입밖으로 내 본 적이 없다.

인간은 모두 다 다르고, 평균화할 수 없고, 뭉뚱그려 똑같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가려고 했던 대학이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그 한 곳만 생각하며 공부를 했다.

하지만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정보가 늦었고, 결국 지원해보지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다녔다.

친구들은 문예창작학과에 한번 넣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 교육도 받지 못했는데 맨땅에 헤딩하듯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면 백퍼센트 떨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친구들의 조언을 무시했다.


인생은 참 재밌다.

지금 소설 강의를 들으며 나는, 대학을 다시 다니는 느낌에 빠져 지낸다.

요즘 커리큘럼이 조금 빡빡해졌고, 그래서 힘들 때도 있지만, 기초반이다 보니 기초가 쌓이는 느낌이 들고, 몸에 뭔가가 배어드는 느낌이 든다.

내가 원했던 강의를 대학교가 아닌 소설창작강의실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대한 아쉬움이 다 사라졌다.


사람들은 아마추어적으로 뭔가를 하며 프로가 되기를 꿈꾼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렇기 떄문에 아마추어를 넘어서기 직전의 벽에 반드시 부딪치게 되고, 대개는 그 지점에서 포기한다.

처음으로 나는 그 벽을 넘어보겠다고 노력이란 걸 하고 있다.


질 좋은 강의를 수강하기가 참 힘들다.

그렇게 좋은 강의를 하는 곳을 의외로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지금 운이 좋은 사람이다.


중년이 되었고, 아버지 간병도 해야 하고, 나도 건강관리를 해야 해서, 놀고 있는 시간에 취미처럼 다시 시작했던 소설 공부인데, 취미를 점점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진짜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공부를 하는 중이다.

원래 하고 싶었던 건 무리해서 해도 힘들지 않은 법이다.

해야 하는 건 그렇게 할 수가 없지만.


수시로 뭔가를 챙겨줘야 해서 밤잠을 못 자서 생기기 시작한 불면증이 굳어져 버렸다.

당분간은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고.... 그냥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인생이 풀리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내 인생은 늘 똑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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