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낯선 사내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프랑스 영화를 끄고 사내의 팔뚝을 잡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다시 사내를 데리고 올라온 여자는 보름 동안만 같이 지내자고 나를 설득했다. 다음 날 사내는 방을 구하러 나갔다 들어와서 짜장면을 만들었다. 여자의 생일이었다. 나와 사내는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파티를 했다. 나는 타란툴라라는 거미를 키우고 있었다. 나는 타란툴라의 먹이로 귀뚜라미를 줬다. 사내는 타란툴라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몸에 타란툴라를 새겼다고 했다. 강해지기 위해서. 바나나 다섯 개를 먹고 여자를 안았는데도 내 것은 서지 않았다. 사내가 사용하는 아버지의 방에서 프랑스 영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일층 노인이 키우는 오리를 잡아서 날려버렸다. 아버지는 엄마를 찾으러 프랑스로 가면서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내겨 주었고, 택시를 판 돈도 주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사왔던 고양이도 주고 떠났다. 보름이 되었지만 사내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며. 나는 사내에게 타란툴라로 위협을 했고, 사내는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쳤다. 사내는 고량주 냄새를 풍기며 깨어나지 않았다. 여자는 셋이 살면 안되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프랑스 영화라면 셋이 살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셋이 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세 마리의 오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한 놈은 삼각김밥을 쪼았고, 한 놈은 바나나를 쪼았고, 한 놈은 사내의 배 위에 있는 타란툴라를 쪼았다. 여자는 오리를 쫓아내기 위해 몸부림쳤고, 나는 프랑스 영화 속의 세 남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 비디어플레이어에서 프랑스 영화를 꺼내 패대기친 후 검은색 테이프를 쭉 잡아 뽑았다. 순간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내용이다. 타란툴라로 사내를 공격하는 나, 집으로 쳐들어 온 세 마리의 오리들, 보름만 살겠다던 사내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여자는 셋이서 함께 살자고 한다. 나의 것은 서지 않아 여자는 사내에게서 욕망을 채우고, 나는 옥상에서 일층 노인의 오리들이나 잡아서 날리고 있다. 나는 프랑스 영화 검은색 테이프를 쭉 잡아 뽑아버리지만, 내일도 여자는 출근할 것이고, 사내는 프랑스 영화를 볼 것이다.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함께 사는 이야기 속에 프랑스 영화와 오리가 있다. 소설 자체가 한 편의 프랑스 영화 같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가 프랑스 영화처럼 잔잔하게 펼쳐진다. 읽으면서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려봤다.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때우고, 나의 것을 세우기 위해 바나나를 다섯 개나 먹은 주인공 나의 심리가 이해되었고, 짜장면 면발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는 사내와 그 사내와 애인관계인 여자의 이야기, 그 삼각관계가 또 이해되기도 했다. 재밌는 소설이었고, 주인공 ‘나’를 생각하며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