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그녀가 다시 콩을 고르고 있다. 검은콩과 흰콩을 나누는 일이다. 일흔여덟의 나이에 쉰다섯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집 안에는 아버지의 여자라고 우기는 미자 씨와 나 둘뿐이다. 창문은 모두 잠겨있고 블라인드도 빈틈없이 쳐 있다. 감옥 같은 집이다. 짐볼은 그녀가 입고 있는 브래지어와 팬티 다음으로 좋아하는 물건이다. 내가 좋아하고 필요로하는 물건을 귀신같이 알고는 생떼를 부려 빼앗아간다. 나는 그녀 때문에 잘 나가던 북디자이너 일을 그만둔 지 5년째다. 내가 짠 스웨터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꽤 인기 있는 상품이다. 아버지의 스웨터는 이제 오른쪽 팔만 마무리해서 몸통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제 집을 나가면 그녀가 죽었다는 소릴 듣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그녀는 사실 흰콩과 검은콩을 구별해내지 못한다. 두 개의 함지박 속에는 항상 검은콩과 흰콩이 보기 좋게 섞여 있다. 새 기저귀로 갈아줘야 하는데 움직이기 귀찮다. 물을 따끈하게 데워 코코아를 탄다. 그리고 그녀는 코코아가 담긴 양재기에 파묻힌다. 그녀는 항상 두 팔을 벌려 아버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가 눈과 코와 입에 키스를 퍼붓는다.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한다. 그녀를 요양원에서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병이 생기고 얼마 지나서 그녀는 한 달 동안 병원에 있었다. 내가 먼저 퇴원하는 즉시 그녀를 요양원에 보내자고 말했다. 적당한 요양원을 찾느라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졌다. 내게 그녀는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었다. 아버지는 나더러 그런 그녀를 위해 살라고 했다. 엄마의 죽음은 차라리 깔끔한 슬픔이었다. 그녀는 요양원으로 간지 삼 일 만에 다시 집으로 왔다. 나는 아버지에게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는 편지를 써 두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스웨터에 빠뜨린 코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녀를 안고 목욕탕으로 가서 마지막 목욕을 씻긴다. 욕실 바닥에 그녀를 눕히고 나는 목욕탕 문을 닫는다. 식탁 위에는 한 코가 빠진 아버지의 스웨터가 놓여 있다. 라는 내용이다. 일본 유학을 간다는 마지막 편지를 아버지에게 남기고 집을 떠나려고 하는 나의 ‘도망’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간병하다가 지쳐 집을 떠나려고 하는 나의 이야기. 5년동안 나는 헌신했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끝도 없는 간병 부담 뿐이었다. 결국 나는 집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집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나는 할머니의 목욕을 시키고, 아버지의 스웨터를 짠다. 약간의 돈과 함께 아버지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나는 비로소 도망을 가려고 한다. 나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도망가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가족 간병이라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에. 치매 이야기를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설정하여 새롭게 풀어낸 점이 독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