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제목[소설] 김희진, 칼 : 200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2025-05-11 13:17
작성자

줄거리를 살펴 보면, 

 

당신은 이런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설 줄 몰랐다. 당신은 누워 있다. 잠시 후 그녀가 당신이 누운 간이침대 옆에 멈춰 서서 의뢰서를 뒤적였다. 다른 부검 팀은 없었다.

카메라를 든 남자와 보조연구원이 녹색가운으로 갈아입고 들어섰다. 그녀는 마스크를 귀에 걸고 부검용 장갑과 고글을 착용했다. 당신은 온전히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그녀 앞에 전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구원이 찍는 카메라의 하얀 플래시가 당신의 몸 위에 잠깐씩 내려앉았다.

그녀가 당신을 만난 것은 사흘 전 금요일 밤이었다. 의대에 입학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의료사고 때문에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가끔 요양소로 면회를 가면 그녀의 아버지는 휑한 시선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검의를 선택했다. 부검에는 의료사고가 있을 수 없다.

당신의 삶은 언제나 조율이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겨울이 끝나면서부터 살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신의 아내는 술에 취해 밤 열두 시가 넘어서 들어오기도 했고 당신의 손이 닿으면 진저리를 치며 등을 돌렸다. 아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때 당신의 첫 번째 줄이 끊어져 나갔다.

그날 밤 당신과 그녀는 호텔 룸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당신이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없었다. 공허, 지난 밤 무의미했던 육체의 격렬함과 지금껏 지켜온 삶의 허상들, 팽팽하게 조여 있던 줄 하나가 또다시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아내는 서로 힘들게 하지 말자고 했다. 삶이란 팽팽하게 조여진 줄이 하나씩 끊어져 나가는 것을 견디며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약을 입어 털어넣고 보드카를 들이켰다.

휘청거리던 당신의 몸이 아내의 몸 위로 푹 꼬꾸라졌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당신을 세게 밀쳐냈다. 당신은 꼿꼿이 뒤로 넘어지며 장식장 유리를 깨고 쓰러졌다. 마지막 남아 있던 외줄을 당신 스스로 풀어준 것이다. 이제 당신은 아무것도 연주할 필요가 없었다.

연구원 하나가 샤워기를 들고 당신의 몸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오히려 개운함을 느꼈다. 당신은 영안실로 옮겨져 장례절차에 따르게 될 것이다. 당신은 부검실에 남겨두고 온 그녀를 잠시 생각했다.

당신을 보낸 그녀는 손끝으로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어졌다. 다음 준비 됐다는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얀 시트에 덮인 또 한 구의 시신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의 메스를 든 손이 바르르 떨렸다.

 

라는 내용이다.

 

부검의가 직업인 그녀는 안면이 있는 당신을 부검하게 된다. 당신의 죽음과 당신의 삶을 생각하며 퍼즐을 맞춰가듯 당신의 죽음을, 당신의 몸을 부검한다. 그리고 당신을 장례식장으로 보내고 다음 시신을 부검하기 위해 메스를 들지만 그녀의 손이 바르르 떨린다. 그녀는 의료사고로 남은 생이 무너진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며 다음 시신을 부검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메스를 잡는다.

부검의라는 독특한 직업이 설정되어 있는 소설이라서, 재밌게 읽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을 부검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녀와 당신의 관계, 그녀와 당신의 죽음 이후의 관계 등을 생각하며 소설을 읽었다.

삶을 현악기의 줄에 빗대어, 줄이 끊어지는 것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재밌었다.

하나 하나 끊어져 가는 삶의 줄, 그리고 남아 있는 삶의 줄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모든 줄이 다 끊어졌을 때,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