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잠시 집에서 책을 읽고 놀던 시절에 이 곡을 피아노로 연습해서 친 적이 있었다. 치기에 어렵지 않은 곡이었고, 정통 피아노음악이 아니라 재즈피아노 음악이기 때문에 편하게 칠 수 있었다. 이 곡을 연습해서 나에게 전화를 하는 분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넌 피아노를 칠 줄 알아서 좋겠다. 라고, 작가지망생이자 국어국문학과 학생이었던 서울에 살던 오빠가 나를 부러워하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젠 피아노도 없고, 손도 굳어서 잘 못 친다. 물론 지금도 피아노학원에서 한달 정도 연습하면 약간은 치긴 하지만,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치지는 못한다. 피아노를 그만둘 때에는 아무 미련이 없었다. 그런데 그만두고 나서 심각한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그 시기를 겪고 나서 주기적으로 십 년에 한 번씩 피아노학원에 등록해 한두 달 치다가 그만두곤 했다.
그 자리를 소설이 채웠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솔직히 피아노와 소설 중에서 잘하는 건 피아노이지만, 희한하게도 나는 피아노를 싫어하고 소설을 좋아했다. 리듬대로 똑같이 쳐야 하는 게 싫었고, 피아노에서 연주자가 구사할 수 있는 테크닉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피아노의 세계도 연주자에 따라 얼마든지 무궁무진해질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와 피아노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소설은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이기도 했고, 백지에 무궁무진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예술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린 마음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소설은 예술이 아니다. 소설은 생산이다. 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쓰거나 소설을 써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글과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인세는 작고, 독자들의 눈높이는 높고, 그래서 작가는 중간에 끼여 있는 신세가 아닌가 싶다.
일 년 넘게 공부하고 읽었더니 소설창작능력이 아주 조금 늘어난 것 같다. 아주 약간 자신감이 생겼다. 이 당당함이 얼마만일까.
하루종일 음악을 듣고 있다. 아버지 간병 때문에 요즘 날밤을 새는 날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서 편하게 놀며 지내고 있다. 벌써 독서를 안한 지가 꽤 된 것 같다. 읽어야 하는데, 강의노트 정리해야 하는데, 복습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만 외치고 행동으로 못 옮기고 있다. 며칠만 더 이렇게 지내야겠다.
편안하게 계속 놀며 지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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