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읽을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꺼내두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광주에서 읽었던 책인데,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PC통신 하이텔 <글나래> 동호회에서 몇몇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르헤스> 읽기 열풍이 불었다. 그래서 나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잦은 이사를 하며 책을 전부 다 없앴다. 그래서 남아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었는데, 요즘 다시 책을 구입하고 있다. 구입한 책들을 다 읽는 게 지금의 목표이다.
아버지와 나는 생활이 비슷하다. 각자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고, 아버지는 티비를 보고 나는 노트북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고, 같이 밥을 먹고, 가끔 같이 외출을 한다. 내 성격도 아버지와 비슷한 면이 많다.
보르헤스의 책을 꺼내 두고 보니,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1999년 12월의 어느 겨울날이 문득 생각난다. 그때까지는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서울에 동생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얻어줬다. 딱 11개월 동안 동생과 함께 살고 나는 결혼을 했다. 마치 결혼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것처럼, 그렇게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중간 중간 다른 곳으로 이사도 많이 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광주가 고향이기는 하지만, 제2의 고향이 서울이라고 할 정도로, 내 인생의 절반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IMF가 터졌기 때문에, 친했던 학교 친구들은 지금 다 서울, 경기권에서 살고 있다. IMF 때문에 지방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서, 다들 서울로 올라왔다. 결혼을 하거나 혹은 취직을 하거나 등의 이유로.
아버지와 남은 시간동안 서울에서 살기로 했다. 광주에 내려가도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노후를 광주에서 보내고 싶다고 하셨던 아버지는, 잦은 전라도 여행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셨는지, 그냥 서울에서 살겠다고 하신다.
광주에서 살 때는 편안한 삶을 살았지만, 자유롭지는 못했다. 서울에서 살면서는 고생도 많이 했지만, 자유롭기는 하다. 나는 자유로운 게 좋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에게 광주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삶의 대다수를 보내셨고, 사회적인 성공도 하셨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기 때문에. 그리고 가족들과의 좋은 추억도 있기 떄문에.
나에게 광주는, 공부했던 기억 밖에는 없는 곳이다. 학교에 입학한 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공부했던 기억만 난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게 큰 복이긴 했다. 친구들은 자잘한 아르바이트들을 하기도 헀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광주는 공부를 한 기억 외의 다른 기억이 없는 곳이다.
우리는 정말 광주를 떠나고 싶어 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처음 생각했던 목표대로 살아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목적지는 생각한 대로라는 것, 그것으로 우리들은 위안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중년의 나이에 친구들과의 자잘한 대화들이 힘이 된다. 다들 살아온 삶은 다르지만, 다르면서도 또 비슷하다는 게 삶의 아이러니이다.
책 한 권을 꺼내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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