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지 만 6년이 되었고, 햇수로 7년 째이다. 그동안 바빠서 엄마 생각을 할 틈이 별로 없었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가끔 엄마를 생각하고, 무의식의 작용 덕택인지 꿈속에서 만나고, 그렇게 보냈던 시간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 꿈에서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무의식의 작용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정말 다정다감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분이셨다. 아버지가 조금쯤 비현실적인 면이 있고 낭만주의적이라고 한다면, 엄마는 그 반대였다고나 할까. 엄마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주부로서 사셨고, 가족들 밖에 모르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혼자가 되는 걸 견디지 못하셨던 분이기도 했다.
끝까지 엄마는 다정한 엄마로 남아 주셨다. 다음 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엄마는 내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다. 내 덕택에 행복했다고 하시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버티며, 엄마를 원망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벗어나자, 더 이상 엄마를 원망할 수 없었다. 엄마의 삶이 너무도 잘 이해됐기 때문에. 엄마가 가족들을 얼마나 조건없이 사랑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스마트폰 안의 엄마 사진 몇 장을 보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아메리카노를 좋아했던 엄마를 생각한다. 모든 걸 다 잃었을 때에도, 내가 있어서 버티셨던 엄마. 내 많지 않은 월급을 든든해하셨던 엄마. 일하는 나를 보며 고생한다고 마음 아파 하시던 엄마. 세상을 겪으며 점점 강해지는 나에게 언젠가부터 의지하시던 엄마. 엄마가 더 오래 내 곁에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고생만 하다가 가셔서 마음이 아프다.
아들이 왜 딸을 그렇게 예뻐하느냐고 하면, 엄마는, 딸이나 아들이나 다 똑같은 자식이라고 대답하셨고, 아들이 자기만 낳지 왜 누나를 낳았느냐고 하면, 엄마는, 너를 안 낳을 수는 있어도 첫번째 자식인 누나를 어떻게 안 낳을 수 있느냐고 답해서 아들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드셨다.
늘 약했던 나를, 보호해 주기 위해 노력하셨던 엄마. 세상에 상처받을까봐 늘 전전긍긍해하셨던 엄마.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날이다.
현실적이었던 엄마는, 내가 글을 쓰는 건 좋아하셨지만, 굳이 소설을 써야 하냐고 내게 묻곤 하셨다. 나는 꼭 소설이 쓰고 싶다고 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조금쯤 답답해 하셨지만,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삼십대가 되면서부터 소설을 쓰지 않았고, 사십대가 되면서 부터 책을 읽지 않았다.
엄마의 말씀대로 현실을 살아가고, 세상을 겪으며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책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젠 엄마가 없으니, 내 소설을 읽어줄 독자가 한 명 사라졌지만.
엄마는 나를 때때로 자랑스러워 했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보다 내가 더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하며 좋아했고, 어렸을 때 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나를 보며 자랑스러워 하셨고,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좋아했을 때에도 나를 든든해하셨다.
화려한 생활을 하는 딸이길 바라셨던 엄마의 기대와 달리,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고, 늘 평범함을 추구해 왔다. 화려함의 이면에 감춰진 힘든 삶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엄마는 그 화려함의 이면을 보지 못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원하는 대로 평범하게 나의 삶을 살고 있고,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엄마가 없어서 조금쯤 허전하기는 하다.
우리 엄마. 많은 상처와 많은 아픔이 있으신 분인데, 본인의 상처와 아픔을 가족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던 분이다. 가족들에게는 정말 순수한 사랑만 주고 싶어 하셨던 우리 엄마.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나는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 같다. 내 마음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우리 엄마. 내가 뭔가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꿈 속에서 조언을 해 주시는 우리 엄마. 하늘에서 나의 삶을 바라보고 계실 우리 엄마를 생각하며, 나는 더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엄마의 제삿날이다. 엄마를 생각하며, 남은 오늘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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