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도구라고 강의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나는 소설이라는 도구를 나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소설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얼마나 나에 대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았을까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 강의를 처음 들었던 이십대 때, 소설은 잘 못 썼지만 책을 사랑하는 마음 만큼은 컸다. 인문학 책들을 주로 읽으며, 다양한 소설책들을 읽으며, 나는 나만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조금씩 키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나마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공부를 해 보려고 소설 강의를 등록했다. 합평 때 제출할 소설을 쓰고 고치는 중인데, 내 안의 이기심이 그대로 다 드러난 것만 같아서 창피하기만 하다. 제출은 하게 되겠지만, 어느 선까지 내가 고쳐서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이 소설을 고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나에 대한 이기심으로 글을 쓰는 거든, 다른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거든 상관없이 당분간은 그냥 되는 대로 많이 써 봐야 겠다. 준비해 둔 소설이 없어서 많이 써 두어야 강의 시간에 소설을 발표할 수 있다.
삶을 살 만큼 살았다. 이십대 때에는 삶이 뭔지 잘 몰랐는데, 지금은 중년이 되어서 인지 그렇지는 않다. 내 직업에서도 충분히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나는 왜 굳이 또 소설을 쓰려고 하는 걸까, 자문해 보았다. 내 직업에서는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고, 하고 싶은 일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나만의 답을 내렸다. 하고 싶은 일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한때 하고 싶었던 일을 통해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나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면 조금은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소설도 조금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소설을 쓰며,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한다. 참 다행히도 주변 지인들이 내 소설을 좋아해 줘서, 어쩌면 그래서 다시 한 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소설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십년 넘게 멈춰왔던 독서를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통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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