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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연어회와 막걸리 한 잔2025-09-13 17:38
작성자 Level 10

아버지가 연어회가 드시고 싶다고 해서 사다 드렸다.

연어회를 딱 4점 드시더니 배불러서 못 드시겠다고 한다.

결국 연어회는 내가 다 먹어치웠다.

막걸리 한 잔과 함께.

아버지는 주무시고 나는 막걸리를 한 잔 마신 상태로 내 방에 왔다.

저녁 시간인데 소설을 읽을까 차를 마시며 쉴까 생각중이다.

술을 한잔 마셨더니 조금 알딸딸하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런데 가끔 막걸리와 맥주를 즐긴다.

막걸리는 한 잔, 맥주는 한 캔이 적정 주량이다.

많이 마실 땐 막걸리 반 병, 맥주 큰 것으로 한 캔.


사회생활을 할 땐 어거지로 술을 마셨다.

회식 때 나만 술을 못 마신다고 안 마실 수가 없어서, 억지로 마셨더니 주량이 조금씩 늘었다.

사회생활을 그만두고 쉬니, 다시 주량이라는 게 원위치로 돌아왔다.


언니는 술을 못 마실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할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회식을 하고 나면,

생각보다 언니 술 잘 마시네요.

라는 말을 듣곤 했다.

정신력으로 버텼던 회식이었다.


사회생활을 그만두니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금도 사람들은 일에 치여 살겠지.

일 대신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한 나는 또다른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지만, 가끔은 일에 치여 살며 힘들어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이젠 건강이 안 좋아서 돌아갈 수가 없는 나의 직장.

생각보다 빨리 퇴사를 했다.

오십대 중반까지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가끔 추억 삼아 알바몬 앱을 들여다 보며 옛 생각을 한다.


자기 안에 쌓인 것들은 어디로 가지 않나보다.

고객 상담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비대면으로 만났고, 겪었다.

그 경험들이 내 안에 쌓이고 쌓여 인간관계를 편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편하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의례 그렇게 말한다.

제가 상담사라서 그래요.

라고.


상담사로서 살았던 에피소드를 소설로 한 편 써 봤다.

에피소드만 나열되어 있어 소설적 매력이 전혀 없어서 강의 시간에 제출을 할 수가 없는 소설이지만, 내 상담사로서의 삶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출할 소설이 없으면 또 끄집어 내서 제출하고 혹독한 합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이제 적은 나이 아니야.

친구가 카톡으로 말했다.

나는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의 병도 잊어버리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주어진 시간동안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주어진 시간동안'이라는 말이 왠지 거슬렸다.

하지만 사실인걸.^^

주어진 시간의 길이는 아무도 모른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건 절반쯤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절반쯤은 운명이다.


강의 숙제를 끝내고 나니 막걸리가 유난히 마시고 싶었다.

마트에 가서 막걸리 한 병과 컵라면 한 개와 목살 한 팩을 사서 집에 왔는데, 아버지가 남긴 연어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살 한 팩은 냉장고에 집어 넣고, 컵라면은 전자렌지 위에 올려두고, 막걸리를 따서 한 잔을 마시며 행복해했다.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 했을 떄에는 나는 행복을 멀리서 찾았다.

지금은 친구들의 눈에 비친 나는 조금쯤 힘들어보일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행복하다.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영원히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님께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의 허전함과 인간이라 느끼는 후회는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 떄문에 시간이 지나 모든 것들이 편안해 질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지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인간이라 후회는 하겠지만, 큰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중년의 나이에 인생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중년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의무감을 조금쯤 해결한 상태이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쯤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소설은 잘 써지지 않지만, 그래도 쓰려고 노력한다.

제출할 수 있는 소설은 없지만, 제출 못할 소설이라도 써보려고 노력한다.

상투적인 소설이라도 완성해보려고 하고, 완성하고 나서 휴지통에 처박아두는 일을 반복하면서, 내 소설 쓰는 능력도 언젠가는 조금쯤은 늘어나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평생 고생만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았고, 경험할 것들도 많이 경험하고 살았고, 잠깐의 고생을 하긴 했지만,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달라진다.

나의 행복의 기준은 어려서부터 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잠깐의 고생은 내 인생의 약이 되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살다가 세상을 안 느낌.

힘든 상황이었을 때 나에게 잘해줬던 사람들. 아이들.

그 모든 것들을 가끔씩 생각한다.

그들을 위한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는다.


이젠 쉬어야 할 타임이다.

15년 가까이 너무 달려왔다.

주변에서 다들, 이제 쉬지 않으면 진짜 큰일난다, 라고 말들을 한다.

누구보다 내 자신이 내 몸을 잘 안다.

이젠 정말 쉬어야 할 때이다.


나에게만 특별히 옥상을 개방해 준 우리 오피스텔 관리소장님.

지나가다 들르면 늘 안부를 물어주는 동네 분들.

늘 따뜻한 눈빛으로 나만 바라봐주는 우리 아버지.

가끔 카톡을 하며 안부를 나누는 친구들과 동생들과 언니들.

생각 외로 내 주변에는 나를 걱정해 주는 분들이 있다.


연어회에 막걸리 마시고 취했나보다.

낙서가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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