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산책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시장에서 육회용 소고기를 만원에 팔아서 한 팩을 사 왔다. 아버지와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육회를 무쳐서 소주를 조금 마셨다. 아버지도 즐거워하셨고, 나도 행복했다. 만원의 행복이다.
설거지를 하고, 내 방으로 왔다. 세 시간 정도 나만의 시간이 확보됐다. 오늘 박상우 작가님의 중편소설 <독서형무소>를 스토리코스모스에 접속해서 읽었다. 2013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젤리피시>를 한번 더 읽고 정리하고, 조금 쉴 생각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산책을 하며 다이소에서 간단한 쇼핑을 했다. 주방용품 몇 가지를 사 왔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하다. 오전 알바를 두 시간 반 밖에 안 하는 데도, 일을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요즘처럼 편하게 산 적이 있었을까. 지출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니, 편하기도 하다. 주 2회 오후 알바를 하나 더 구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알바 구하기가 힘들다.
아버지에게 여쭤봤다. 딸이 직장 다니는 게 더 좋아? 아니면 아르바이트하고 소설 쓰고 사는 게 더 좋아? 라고.
아버지는 후자가 더 좋다고 하셨다. 이젠 딸이 편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병원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어차피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내 치료는 언제 끝날 지 알 수가 없는 장기전이다.
나는 조금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편이다. 내 상황에 만족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원하는 소설 공부를 하고 사니 삶이 즐겁다.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건강을 잃고 수입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오래 살려고 빨리 내 건강을 캐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무리하지 않고 조금 쉬어가며 천천히 살아가려고 한다.
인생이라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것 같다. 직장생활도 열심히 해 봤고, 노동도 열심히 해 봤고, 사회생활을 하며 경험도 조금 쌓아 봤고, 돈을 벌기 전까지 읽고 싶은 책들도 많이 읽어 봤고, 소설을 꿈꿀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있었다. 돈은 있었다 없었다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내가 컨트롤하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느냐 였던 것 같다. 삶에 끌려다녔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지만, 대체로 나는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방 안에 놓인 엄마와 동생 사진을 본다. 한없이 인자하게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시는 우리 엄마. 그리고, 삶이 힘든 듯 조금쯤 어두운 표정의 내 동생. 삶의 끝은 죽음이고,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지만, 그저 한 줌의 재가 되어 흙과 함께 묻히거나 허공에 날아갈 뿐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삶의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과정 속에 행복이 있고, 과정 안에서 우리는 대다수를 얻는다. 결과는 그저 결과일 뿐이다.
내일까지 일하면 월요일 하루는 쉰다. 주5일이고, 이틀 연속 붙여서 쉴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 일하면 쉬고, 또 조금 일하고 나면 쉰다. 동적인 삶을 청산하고 정적인 삶을 시작한 요즘. 처음에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많이 적응이 됐다.
아버지는 육회가 먹을만 하다고 하셨다. 가끔 술안주로 육회를 준비해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