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오래오래 니 곁에 있어 줄게. 라고. 물론 내가 시켜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내가 시켜서 결국 세 번이나 똑같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 점점 더 나빠지시는 것 같다. 이젠 식사도 잘 못 하신다. 깨죽도, 뉴케어도, 이젠 속에서 받질 않나보다.
강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마음이 심란해서 텍스트가 읽어지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강의만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결석은 안 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오래오래 니 곁에 있어줄게. 라고 아버지가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말 한 마디에 모든 것들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내가 맏딸로서 해야 할 일들이 이제 다 끝나간다. 이젠 내 인생을 살아야 할 시기가 오는데, 뭔가가 좀 허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지금이 좋아서, 혼자 있는 걸 상상하기가 어렵다.
언제까지 소설 공부하고 소설 쓸까? 라고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는, 계속 해. 라고 말씀하셨다.
11개월을 놀았더니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은 자책감이 든다. 아버지를 케어하고 내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니 조금 낫긴 하다. 아버지는 아마 나 때문에라도 오래 버티실 것이다.
다음 생에 꼭 다시 만나. 우리 가족 모두 다 다음 생에 꼭 다시 만나. 라고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음 생이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있다고 믿으며 사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내 인생의 짐은 점점 줄어드는데, 그만큼 나의 삶에 대한 욕망도 줄어든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모두 다 줄어든다. 축소지향적인 삶을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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