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샐 생각은 없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십 분에 한 번씩 일어나시는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이제서야 주무신다. 나는 잠이 다 깨서 말똥말똥한 상태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와서 아버지의 옆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옆에는 강기진 저 <주역독해> 책을 놓아두고, 책은 안 읽고 소설도 안 쓰고 그냥 놀고 있다.
아침이 되면 잠을 못 자서 몽롱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 오늘은 무리해서 뭔가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겠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4키로 정도 감량했는데, 도로 살이 찌고 있다. 요즘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다이어트가 실패하지 않도록 다시 조금 조절을 해야겠다. 몸이 가벼워서 좋았는데 다시 무거워지고 있다.
티비도 끄고 방 안의 불을 다 껐더니 방이 깜깜해졌다. 노트북만 켜둔 상태로 깜깜함을 즐기고 있다. 그래도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주역독해>를 한번 다 읽고 나서는 주역 원래의 글에 집중하며 천천히 의미를 곱씹어봐야겠다. 천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200 페이지 조금 넘게 읽었다. 그냥 가볍게 독해 내용에 집중하며 읽고 있다.
건괘와 곤괘 속에 모든 게 담겨있는 것 같다. 세상의 이치, 삶의 이치, 순리라는 것... 모든 게 건괘와 곤괘에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강기진 저자가 쓴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해석이 담겨 있는 책인데, 사실 주역이라는 책은 읽는 사람 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A4 4장 쓰다가 만 소설을 어떻게든지 완성해야겠다 싶다. 올해까지 완성해서 내년 1학기 강의 시간에 제출하려고 한다. 한계가 많은 소설이지만, 일단 내가 쓸 수 있는 건 이게 한계인 것 같다.
사건이 없는 소설을 쓰면 안되는데, 내 소설의 대다수가 사건이 없다. 현재 사건이 만들어지고 그것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는데, 왜 나는 그렇게 쓰지 못하는 걸까. 이번 학기 제출 소설은 나름대로 사건을 만들어본다고 만들긴 했는데,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진짜 사건이 없다. 그래서 소설이 안 풀리나 보다.
소설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1%의 도구라고 늘 강조하시는 선생님 말씀을 생각한다. 이십대 때 선생님께 강의 뒤풀이 시간에, 선생님! 저는 소설이 제 인생의 전부예요.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때 선생님은, 소설이 인생의 전부가 되면 안된다고 하셨다. 소설은 호미같은 1%의 도구이지 전부가 되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왠지 섭섭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십 년이 넘게 지나고 보니 이제서야 선생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선생님은 소설은 욕망의 도구가 아니라고 하셨다. 욕망의 도구로 소설을 쓰면 안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인생을 살만큼 살아온 나이가 되고 나니 이제서야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0개월 동안 강의를 듣고 책도 읽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당분간 나에게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읽고 쓰고 공부를 해야겠다.
주무시던 아버지가 또 일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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