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note

제목병원에 다녀와서2025-04-16 11:35
작성자 Level 10

병원에 다녀왔다.

종양내과 의사가 다음 번부터 약을 못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의료보험 처리가 불가하면 약을 줄 수가 없다고.

보험공단에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긴 했는데, 의료보험처리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고가의 약이라 의료보험이 안되면 약을 먹을 수가 없다.


언제까지나 항암약 복용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성이 생길 수도 있고,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가타 등등의 사유로.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말씀처럼, 해야 하는 일은 이제 정말 그만 하고, 남은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소설 쓰는 걸 다음 학기 이후로 미루려고 했는데, 열심히 써야 할 것 같다.

잘 쓰든 못 쓰든 열심히 써야지.


내가 가지고 있는, 쓰레기통에 들어갔다가 나온 소설 하나는 신파적인 통속소설 같은 그런 이야기이고, 너무나 익숙해서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다만, 그 이야기에 고객센터 상담사의 일상이 아주 조금 들어가 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아주 조금 소설 쓰는 게 재밌어지려고 한다.

본격소설이라기엔 한계가 있고, 통속소설이라기엔 또 뭔가 미흡한 애매한 소설들.

그냥 그렇게 낙서같은 소설 쓰기를 즐겨보려고 한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설사 항암약 복용이 중지된다고 해도, 생각외로 오래 버티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냥 내 하루하루를 즐겁고 소중하게 살 생각이다.

그토록 원했던 소설 공부를 하고, 소설을 쓰면서.


꼭 오래오래 산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니까.

짧지는 않게 살았고, 남은 시간이 아직 나에게는 있으니까.


내 방을 얻은 건 정말 잘한 것 같다.

자동차를 없앤 것도 정말 잘한 것 같다.

모든 것들을 대충 다 정리했고, 간편하게 살고 있다.


5년 생존을 목표로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6년을 넘게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거다.

좀 더 일찍 내 주변을 정리하고 내가 원하는 소설을 쓰고 공부했으면 지금쯤 웹북도 냈을텐데, 시간을 많이 낭비한 것 같다.

그 대신 포승에서 살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로 인해 나만의 경험이 생겼다.

그 경험들이 내 소설쓰기의 자산이 되고 있다.


소설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때 뭔가 전부인 게 필요한 것 같다. 내 전부라고 느껴지는 뭔가가 있으면 삶을 살아갈 때 작은 에너지가 된다.


내가 좋아했던 글로 자유롭게 낙서를 하고, 소설을 읽고 난 짧은 느낌을 쓰고, 소설을 쓰는 요즘, 그리고 이 공간이 소중하다.


마음을 놓아버리니 편하다.

약을 안 먹고도 2년을 버텼는데, 앞으로도 나에게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을 잘 안다.

이제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이제 운전이 힘들다고 투덜대며 차를 팔아버렸더니, 몸이 편하다.


마음이 편해졌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편하게 책을 읽고, 외롭지 않게 적당히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나만의 자유시간이 많은 요즘이 나는 참 좋다.

아버지는 오늘의 일을 모르시는데도 요즘 나를 보며 가슴 먹먹해 하신다.


그래도 요즘 위안이 되는 건, 아주 약간 소설 쓰는 게 늘었다는 거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냥 많이 써 봐야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면 오래 살 수도 있다.

이젠 억지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야겠다.

조금 더 빨리 그렇게 살걸, 하는 후회가 생기긴 한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기 자신의 인생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나도 내 인생이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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