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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이가 되신 아버지2025-12-05 01:12
작성자 Level 10

우리 아버지는 많이 편찮으시다.

그리고 많이 편찮으시자 갑작스레 정말 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정정하시고 눈빛만큼은 강하셨던 분이 이젠 약해지시고 아이가 되셨다.

밤에 주무실 때 내가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침대에 직접 안아서 눕혀드리는데, 그때 나를 안으며 아버지는 행복해하신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버지는 저녁 진통제를 드시고 나서 방금 전 추가 진통제를 한 알 더 드시고 주무신다.

많이 편찮으신데, 병원에서는 호르몬치료라도 하자고 하는데, 아버지의 지금 상태로는 사실 무리이고 고통만 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치료 대신 통증 조절을 선택했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신다.

일 년 가까이 공부방을 얻어서 혼자 낮에 공부하며 지냈더니 많이 외로우셨나보다.

이젠 아버지와 함께 나의 일상을 먼저 챙기며 살아가려고 한다.


아이가 되신 우리 아버지.

인간은 엄마 뱃속에서 자라서 세상에 태어나 아이로 살다가 성인이 되고, 그러다가 죽을 때에는 다시 아이가 되는 것 같다.

아이로 태어나 아이로 떠나는 인간의 생명.


아버지에게 더 잘해드리고 싶은데, 가끔은 보는 게 괴로워서 아버지를 보지 않고 노트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아버지가 조금 괜찮으신 것 같아서 혼자 노트북을 많이 했다.

그래서 하루종일 딱 한 번 안아드렸는데, 아버지가 좋아하신다.

평소에는 자주 안아드리는데, 안아드릴 때마다 아이같이 좋아하신다.


팔십이라는 나이.

우리 집안은 팔십이라는 나이에 취약하다.

그래서 나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올해는 괜찮으실 거라고, 내년에는 좀 지켜보자고 생각하며 나의 마음을 다독인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는 이제 나에게 뭘 하라고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

이젠 네가 다 알아서 잘한다, 고 하시며 지켜보기만 하신다.

뭘 여쭤봐도 아버지는 모른다고 알아서 하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깨셨다.

오늘은 내가 잠자기는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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