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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오랜만에 깊이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며2025-12-18 02:54
작성자 Level 10

아버지가 오늘은 정말 푹 주무신다.

전등을 끄지 않고 노트북을 하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정말 깊이 잘 주무시고 계신다.

암이 장기전기, 뼈전이가 다 되었다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꽤 오랜 기간동안 무표정으로 지내셨다.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 조금씩 기분이 나아지셨다.

코를 골고 주무시는 우리 아버지.

티비를 끄면 금방 잠에서 깨어나시기 때문에, 소리를 줄여서 밤새 티비를 틀어놓는다.

언론인으로 오래 일하신 탓에, 퇴직하신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티비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신다.


팔십세인 아버지가, 말기암인데, 얼마나 사실 수 있을까.

의사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호르몬치료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고, 나는 의사에게,

3~4년 전에 못 견디신 치료를 이제와서 견디실 수 있겠느냐고, 고통 드리지 않고 편하게 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호르몬 치료 대신 통증 관리로 결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요즘 통증관리가 잘 되는지 편해 보이신다.

고통도 별로 없다고 하시고,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하신다.

내가 소설을 읽는 걸 바라보시기도 하고, 나와 이야기도 가끔 하신다.

이젠 내 소설을 읽자고, 새 소설 없느냐고 묻지는 않으신다.

아버지가 소설을 읽거나 책을 읽을 만큼의 여건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아버지는 늘 말없이 나를 지켜봐 주시는 쪽이었다.

평생동안 그랬다.

엄마는 늘 잔소리를 하며 나를 뜯어고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시고, 받아 주시고, 이해해 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말 한두마디를 던져 주시곤 했다.


나더러 다시 소설을 써보라고 아버지가 권하셨을 때, 나는 아버지를공격했다.

아빠는 나 소설 쓰는 거 싫어했잖아.

라고.

아버지는, 싫어한 적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딸이 소설을 쓰며 행복해하고, 소설을 읽으며 낄낄거리고 웃는 걸, 아버지는 밝은 표정으로 바라봐 주신다.

니가 소설을 좋아해.

라시며.


아버지는 오랜만에 정말 푹 깊이 주무신다.

나는 어제 너무 많이 자서 오늘은 잠자기 틀린 것 같다.


친구와 낮에 통화를 했다.

친구는 우리 아버지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옆에서 끝까지 아버지를 챙기는 게 사실 요즘 드문 일이라고 하며.

나더러 힘들면 이제 그만 아버지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힘들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끝까지 모실 거라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함께 있을 거라고.

친구는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며, 조금쯤 나를 설득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친구들은 내가 아버지에게 희생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께 많은 것을 받고 있다.

그걸 모르는 친구들과 아직도 아버지께 받고 싶어하는 나.

그 사이의 간극일 뿐이다.


가족이라는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족이 가장 큰 짐이 될 수도 있지만, 가족만큼 서로를 사랑해주는 존재도 없다.


아버지는 언젠가 내 곁을 떠나실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나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불변의 사실이다.

세상과 인연을 맺은 동안 자기 몫의 삶을 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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