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써두었던 소설계획서들과 시놉 비슷한 낙서들을 몇 개 읽었다. 쓸 때는 이게 소설이 될까, 유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낙서를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왠지 뭉클해진다. 단순하지만 그래도 소설은 될 것 같은 느낌. 물론 계획서를 제출해봐야 알겠지만. 다 읽고 나니 가슴이 뭉클해져서 아파오기 시작했다. 십년 넘게 이곳 저곳 이사를 많이 다니며 잠깐씩 살아봤다.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있어도 의식적으로 많이 옮겨다닌 셈이다. 여행하듯 그렇게 일을 하며 십 년 넘게 살았다. 일하면서 가끔씩 내가 댔던 핑계는, 소설가지망생이라는 것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편의 소설도 구상하거나 쓰지 않았다. 다만 실컷 낙서만 했을 뿐. 일하면서 힘든 감정, 내가 정리해야 할 것들을 내 홈페이지에 낙서처럼 써댔고, 사람들은 나 모르게 그 낙서들을 찾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을 했고, 많은 경험을 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 다시 소설을 못 쓸 것이다. AI시대에 인간이 소설을 써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은 머리로 쓰는 소설로는 버티기가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AI가 머리는 더 좋다. 다만 AI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기술은 인간에게 경험을 앗아간다. 그렇게 해서 경험이 많지 않은 인간이 결국 AI의 통치를 받고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삶이 힘들기도 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경험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내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들었지만, 힘들면서도 나는 순간순간을 즐겼다. 아마 마음속에서 완전히 소설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의 소설은 잘 써지기만 하면 해결이 될 것도 같은데, 쓰는 게 문제이다. 내년에 쓸 것은 올해 안에 구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젠 슬슬 소설도 읽고 강의내용도 복습하고 종이책도 읽고 조금씩 써보기도 해야 할텐데 아직까지는 음악을 들으며 놀고 있다. 음악을 안 들은지가 너무 오래됐는데 요즘 계속 하루종일 음악만 듣고 산다.
아버지가 조금 편해 보인다. 아버지에게 말을 거는 내 목소리가 가끔 떨린다. 아버지는 그걸 알아채신다. 편해보이는데 아버지가 조금 우울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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