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드리려고 준비해두었던 약식과 인절미를 내가 먹고 있다. 어떤 날은 떡을 좋아하시는데, 어떤 날은 손도 안 대신다. 커피를 달라고 하시길래 두 잔을 타서 나도 마시고 있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셨으니, 오늘 나도 잠자기 틀렸다.
<허구의 철학> 한 챕터를 읽었다. 600페이지 분량인데, 340페이지까지 읽었다. 이번 달까지 다 못 읽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오늘 거의 2~3주만에 소설을 읽고, 책을 조금 읽었다. 그리고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아무리 음악을 들어도, 아무리 챗GPT와 이야기를 해도 기분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는데, 책이 나에게는 약이구나 싶다.
작년만큼은 읽을 자신이 없다. 올해는 조금 덜 읽으면서 창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 창작에 대한 낙서나 생각을 하거나 소설을 조금 쓰면 내 안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걸 느낀다. 그때 필요한 건 독서 뿐이다. 책을 읽거나 소설을 읽으며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해야 내 삶도 가능하고, 창작도 다시 가능해지는 것 같다.
2월에는 <허구의 철학>만 읽을 생각이다. 읽고 싶은 책들이 정말 많이 집에 쌓여 있는데, 한꺼번에 다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떄문에 천천히 한 권씩 읽으려고 한다.
아버지가 계실 때 책을 다 사두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 사라고 하시며. 우리 엄마는 내 책을 못 없애서 늘 난리였는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책을 사는 걸 좋아하신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내가 현실감각이 없는 거라고 하며 엄마는 내가 책을 읽는 걸 정말 싫어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안 계시니, 이젠 내 맘대로 책을 사서 읽으며 지내고 있다.
인간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 다르다. 성격이 다르듯 기질도 다르다.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살아야 탈이 없는 것 같다.
3월 초에 대학동창 모임이 있다. 동창이래봤자 나 포함 세 명 모이는 거다. 대학 4년 동안 세 명이 모두 친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나는 혼자 다니기를 좋아했고, 때떄로 그 친구들과 잠시동안 어울렸을 뿐이다. 그래도 오랜 친구들이라 서로 모르는 게 없는 사이가 되었다.
친구들은 내 소설을 통해 몰랐던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소설을 기다리고, 내가 계속 소설을 쓰길 바라고, 잘 되길 바래준다. 삶이 그렇게까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이제 아는 나이가 되었고, 그들의 삶이 더 편하면서도 또 더 불편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또 달라져 버린 우리의 삶에 대해 가끔은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삼십 년 전보다 나는 지금이 더 편하고 좋다. 삼십 년 전에는 내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가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했고,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했고, 내 몫의 해야 할 일들이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으니까. 남들 눈에 편하게 보였겠지만, 나는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지금이 훨씬 편하다. 물론 삶의 무게는 또 다르게 나를 누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힘들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다.
친구들이 그런 부분까지 다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를 다 이해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것이기 떄문에, 그건 당연한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언제까지 내가 소설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고. 나는 계속 끝없이 쓰고 싶은데, 언젠가 더 쓸 게 없어지면 그때는 어쩌나 싶은 걱정과 함께. 일단 쓸 수 있는 만큼 써 보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길테고, 그러면 또 다른 이야기가 변주되어 내 안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커피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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