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장이고 무빈소장례라서 아버지만 장례식장에 모셔두고 나는 집에 왔다. 조금 자려고 했는데, 아버지 생각에 조금 울다가 잠이 다 깨버렸다. 친한 언니는 옆에서 자고 있다.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가급적이면 소리가 나지 않게 타이핑을 하고 있다.
내일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다. 그리고 화장터로 갈 것이고, 화장을 할 것이고, 뿌려드릴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이 그냥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대를 이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묘나 납골당을 관리할 사람도 없어서 우리 가족은 다 뿌리기로 했다.
혼자 내일 일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친한 친구 두 명과 언니에게만 연락을 했고, 다들 당장 달려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언니가 오늘은 내 옆에 있기 떄문에 내일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은 보기로 했다.
아버지 생각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멍해지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우리 아버지를 이제 보내드린다. 힘들게 81세까지 버텨오신 우리 아버지. 이젠 편하게 쉬시게 해 드려야지.
오래 병으로 고생하신 분 같아요. 라고 장례식장에서 운구하러 나오신 분이 같이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많이 편찮으셨다고 답했다. 아프셔도 아프다는 말씀이 거의 없으셨던 우리 아버지. 고통을 대개는 혼자 삭이시며 그렇게 나를 지켜보시고 나와 함께 사셨다.
이젠 편한 곳에서 편하게 쉬시길 바란다. 한동안은 아버지 생각에 멍해지는 날도 있고, 눈물이 나는 날도 있겠지만, 아마 나도 내 인생에 적응하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가 원하셨던 게 그거였으니까.
잘 살아라. 건강하게 살아라. 행복하게 살아라. 이 세 마디가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남은 내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많이 웃고, 많이 즐기고, 많이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아버지. 편한 곳에서 편하게 쉬세요.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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