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까지는 놀기로 작정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한 달은 내 마음을 정리하는 기간으로 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 달에 책은 꽤 읽었다. 집중이 잘 안되서 읽고 다 잊어버렸지만.
올해는 가볍게 책을 읽고, 가볍게 써 보려고 한다. 작년부터 다시 소설 공부를 시작했는데, 올해 갑자기 소설을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해 한 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겠지.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처음에는 너무도 공허하고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한달이 되니 조금 나아졌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늘 나를 보며 웃고 계시고, 나는 사진 속의 아버지에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한다. 한달이 되니 나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가끔 거리를 걷거나 카페에 가고... 그런 나만의 일상이 생겼고, 그 일상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하루의 대다수 시간을 잠만 잔다. 그동안 못 잔 잠을 다 자나보다. 이번 달까지만 자고 다음 달부터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소설을 왜 쓰는가 생각해 보라고 강의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등단을 위해서인가 울혈(맺힘)을 풀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인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소설을 꼭 써야 하는가,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라고 하셨다.
나에게 소설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날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하루를 살아가듯,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 중의 하나로 책을 읽거나 소설을 쓰거나 고치는 내 삶의 루틴 같은 것. 아직은 창작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훨씬 많다. 차츰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재밌는 게 많은데 나는 왜 소설을 쓰려고 할까 생각해봤다. 아마 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기도 하고, 나를 들여다 보고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삶이 유한하다는 걸 깨닫고 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소설이었다. 사람들은 취미냐고 하는데 나는 취미라고 말을 못 하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깊은 취미>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나에게 소설은 깊은 취미라고.
아버지께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음 생에도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소설을 공부하고 쓰고 싶다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살아야겠다. 소설이 잘 안 써지지만, 사실 쓸 필요도 없는 이야기들을 쓰고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물론 읽는 분들이 괴로울 수 있다. ㅎㅎㅎ~^^
나는 인간과 인생을 이해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로 소설을 사용하고 싶다. 내 인생의 1프로의 도구인 소설이 99프로의 내 인생을 견인해 나가는 하나의 씨앗이 되어주는 것 같다. 아직은 읽을만한 이야기를 생산해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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