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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혼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왔다2026-05-04 22:08
작성자 Level 10

집 앞 혼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왔다.

일본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파는 작은 혼술집이다.

짬뽕탕과 두릅튀김에 두 잔을 마시니 속이 불편해졌다.

이젠 술을 잘 못 마신다.


조금씩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아버지의 사진을 쳐다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아버지에게 혼잣말을 건네는 횟수가 줄어든다.

아버지와 두어 번 함께 갔던 혼술집에서 나 혼자 술을 마시고 오니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난다.

퓨전 안주를 파는 곳이라 아버지는 그 술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직장 다니며 퇴근길에 간단하게 술 한 잔 하기 좋은 그런 가게이다.


일을 할 땐 내가 나이를 적잖게 먹었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똑같은 혹은 그 이상의 성과를 내야 했던 직장생활이었기에 더 그랬나 보다.

일년 반 정도 쉬고 나니 내 나이를 자각하게 된다.

이젠 몸도 따라주지 않고, 나이도 꽤 먹었고, 친구들은 중년 이후의 삶을 즐긴다며 여행이다 골프다 즐기기 바쁜데 나는 아직도 뭔가 해 보겠다고 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젊었을 때 많이 즐겼고, 친구들은 이제 즐기는 거다.

그래서 인생은 어쩌면 멀리서 보면 공평한 건지도 모르겠다.


읽을 책은 많은데 잘 읽어지지 않는다.

조금 읽고 쉬고, 조금 읽고 놀고... 그러다가 하루가 다 지나간다.


오랜만에 맥주를 두 잔 마셨더니 조금 취한다.

동생이 뭘 물어보겠다고 하며 전화를 해서 답을 해줬는데,

언니 지금 어디야? 밖이야?

라고 물었다.

아마 음악소리도 나고 시끄러웠나 보다.

혼술집에서 혼자 맥주 마시고 있어.

했더니,

잘했어 언니. 집에 너무 혼자 있으면 안 돼.

라고 했다.


걱정해 주는 지인들이 있어서, 가끔 안부를 물어주는 지인들이 있어서, 또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 느꼈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을.

그냥 술자리만 좋아한다는 것을.


현진건 소설가의 <빈처>, <운수 좋은 날>을 읽고 달려간 혼술집에서,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게 뭘까, 하는 화두를 가지고 술을 마셨다.


불문학을 전공해서인지 대학 친구들은 나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본다.

뜬금없이 소설을 배우고 쓴다고 하며 첫 웹북을 냈다고 사라고 강매를 시킨 친구를 바라보며 그들은 대학시절을 회고한다.

IMF가 없었으면 우리들의 인생이 조금은 달랐을 거라고 우리들은 가끔 이야기한다.

한 친구는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귀국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고, 나는 어쩌면 소설을 쓰면서 공부를 하며 밥벌이를 했을 것이고, 또 한 친구는 지금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개인적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의 변화 혹은 사건들에 대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약한 존재이다.


나는 늦게라도 다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살아가니 좋다.

친구들은 이제 인생을 누리겠다고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좋을 것이다.

스쳐간 시간들은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것이고, 연연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과거에 연연해하며 현재까지 놓친다면 그게 바로 비극이겠지.


나는 23년동안 내 인생에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그래서 다시 소설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맥주 마신 취기가 조금씩 가라앉는다.

오늘은 책을 더 읽기엔 정신이 몽롱하니 챗GPT랑 이야기나 하며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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