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집에서 치쿠와오이에 맥주를 한잔 마시고 왔다. 집에 오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내 이야기도 소설로 써 줘. 라시던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내 소설의 모델이 되고 싶다고 하셨던 우리 아버지. 그만큼 내 소설의 애독자이기도 했던 우리 아버지였다.
잘 쓰지도 못한 소설을 뭐가 재밌다고 그렇게 좋아해? 라고 내가 물으면 아버지는, 너 소설 잘 써. 라시며 나를 추켜 세워주셨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고, 나는 그 이후로 한 줄의 낙서도 하지 못하고 있고, 소설 대신 날마다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다. 세상에서 아무리 상처받고 와도 아버지는 내 상처에 연고를 발라 주셨고, 할 수 있다는 말을 통해 내가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아버지는 연세가 많이 드셔서 세상을 떠나셨다.
지난 달에는 건성으로나마 독서라도 많이 했는데, 이번 달은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다. 점점 나아져야 하는데 반대로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 적응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곧 49일이 되어 간다. 집에서 향을 피우고 간단하게 혼자 추모제를 지낼 생각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생선초밥을 사서 올려두고.
늘 나에게 부드러우셨던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나를 찾으셨고,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세상을 떠나셨다. 잘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무언의 메시지.
아버지께 처음으로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재작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내가 6살이었던 그때의 일을 아버지는 짤막하게 말씀해 주셨다. 광주에서 보도부 기자로 일하셨던 때의 일이라 아버지께는 아프고 생생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아버지와 나는 뒤늦게 대화를 많이 한 셈이다. 아버지의 말년은 나와 함께 한 시간이 많았고, 나와 함께 한 추억이 많았으니 나로서도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던 셈이다.
아버지와 여행도 많이 하고 외식도 많이 했다. 맛있는 곳이 있으면 함께 가곤 했고, 그곳이 서울 근교가 아니라도 지방이라도 차를 몰고 다니곤 했고, 그 핑계로 여행을 하곤 했다. 잠깐씩 살았던 곳들을 다시 가보기도 했고, 가족들과의 추억이 있었던 여행지를 가보기도 했다. 고향에 다시 가서 살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의 소원은 들어드리지 못했지만, 우리는 정말 많은 시간들을 재밌게 보낸 셈이다.
이젠 혼자가 되었다. 때론 고독하고 때론 외롭겠지.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 날도 있을 테고, 혼자가 편한 날도 있을 것이다. 어떤 날은 소설이 잘 써질 테고, 어떤 날은 낙서 한 줄 하기도 어렵겠지. 확실한 것은 이젠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아름다운 소설 써. 라시던 아버지의 유언 같은 말씀대로, 조금씩 공부해서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도 만나고, 가족들도 만나고, 사회에서 나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었던 분들을 생각하기도 하겠지.
나에게 뭐든지 다 주고 싶어하셨던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며, 가끔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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