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 생활을 끝내고 나서, 소설 공부라는 긴 콜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내 삶에서 걸려오는 콜들을 소설이라는 도구로 옮겨 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콜이 멈춘 것 같은데, 다시 또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면, 소설 강의도 듣기가 어려워 지는 것이 아닐까. 요즘은 이런 생각들을 한다.
재작년 11월 경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작년부터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공부였다. 소설 쓰는 법도, 독서도, 모두 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작년 초. 어찌어찌 작년 한 해를 보내고 나서 올해를 맞이했다. 작년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는 소설을 잘 못 쓴다.
상담사로서는 나름대로 내 역할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딜 가든 적응력이 나쁘지 않았고, 내 몫은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먹는 걸로 풀거나, 쉬는 날 여행으로 풀기는 했지만. 상담사를 하며 체중이 많이 늘었다.
상담사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둔 것을 다시 한 번 읽으며 수정했다. 다음 학기 강의 때 제출할 건데, 다들 왜 이 소설을 썼는지 모르겠다고 할까봐 걱정된다. 주제가 빈약한 느낌. 어떤 면에서는 그냥 힘들다는 토로로 비춰질까봐 걱정되는 소설이다.
소설 공부라는 긴 콜을 받고 있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내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소설이라는 도구를 공부하며, 소설의 틀 안에 삶의 이야기를 넣어보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잘 되지 않는다. 우겨넣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많이 어색하다.
이십대 때에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좋아보였고, 그래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꿈과 달리 나는 상담사로 살았고, 이제서야 다시 소설을 바라보고 있다. 소설을 배운 것이 상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소설도 인간과 인생을 탐구하는 것인데, 상담 또한 인간을 탐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상대방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 그리고 상대방에게 적합한 말을 해줌으로써 화를 누그러뜨리고, 작은 해결로 마무리하는 일. 내가 소설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상담을 잘 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상담사로서의 역할을 다 끝내고, 소설 공부를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다시 상담을 하라는 권유도 많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이제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일단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기관지가 좋지 않아서인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장시간 통화를 할 수 있는 그런 목 상태가 아니다.
가능한 한 오래 소설 공부를 하고 싶다. 쓰고 싶은 만큼 실컷 쓰고, 공부하고 싶은 만큼 실컷 공부하고, 읽고 싶은 만큼 실컷 읽으려고 한다. 성공이나 등단 등의 결과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내 첫 웹북을 읽었다고 하며, 문장이 부드럽다고, 좋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많이 쑥스러웠다. 겨우 한 권 냈는데요. 라는 말로 늘 나는 그들에게 답하고, 그들은 한 권도 못 낸 사람도 많다고 하며 나를 추켜세워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좋았던 날들도 많았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내 삶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웃으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끊어질 것 같지 않은 소설 공부라는 긴 콜. 나는 이 콜을 통해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긴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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