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코스모스에서 작년 6월 1일에 내 첫 웹북이 출간되었다. 여러모로 미흡한 소설이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내 첫 웹북 출간을 가장 좋아해주시고 축하해 주셨던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려고 챗GPT에게 <소설가 배재연에 대해 말해줘>라고 검색을 했더니, 원래는 잘 나오지 않는데 나에 대한 정보가 소설가라고 표기되며 조금 자세하게 나왔다. 그날만 운이 좋게 그랬던 거다. 아버지가 그걸 보시며 울컥 하시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난 아버지에게 뭔가를 제대로 해서 결과물을 보여드린 적이 없던 자식이었다. 공부도 성적이 조금 잘 나오는가 싶으면 다음달 성적은 바닥을 찍곤 했다. 성적은 늘 중구난방으로 스케이트를 탔고, 아버지는 나에게, 니 방식대로 공부하면 된다, 라고 하시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반면에 동생은 늘 탑이었다. 동생은 전교 1등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동생과 비교하며 살았던 것 같다. 동생은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시험도 치지 않고 수시입학으로 진학했다. 반면에 나는 원했던 대학에 지원하지 못하고 하향지원해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 후 동생과 나는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 나는 사춘기가 중학교 때부터 슬슬 오기 시작했는데 오래 갔던 것이고, 동생은 대학 입학 후 사춘기가 찾아왔다. 동생과 나는 대학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 놀았다. 그러다가 동생은 자기의 길을 갔고, 나는 겨우 졸업을 하고 서울로 왔다.
광주에 반도체 공장이 유치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정말 반가웠다. 사실 나는 이제 광주에 갈 일은 없다. 아마 남은 생 동안 서울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광주라는 도시를 생각할 때 반도체 공장 유치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의 인재들마저도 KAIST나 서울로 왔을 때 패배자라는 느낌에 빠져들곤 했고,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반도체 공장 유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로 왔지만 동생과 나는 참 힘들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동생도 나도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고,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그냥 광주에 있지 왜 올라왔느냐고 하실 정도로 지쳐 계셨다. 이제 그랬던 동생도, 부모님도, 세상에 안 계신다.
대학 졸업 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마 서울로 왔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걸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던 내 고향이 싫었기 떄문에. 지금은 화상 강의도 있고, 인터넷이 많이 발달해서 지방에서도 원하는 공부를 어느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내가 서울로 왔던 이유는, 원하는 걸 배우고 싶었기 떄문이라고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아버지는, 그날 이후 서울이 좋다고 하셨다. 그게 부모님의 마음일 것이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원없이 소설도 써 보며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이런 기회는 인생에서 많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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