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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버지와의 대화2025-02-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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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소설 세 편을 인쇄해서, 한 편을 읽었다.


"언제 일할래?"

어제 아버지가 차 안에서 물었다.

"병원 치료가 좀 안정되면"

이라고 답했다.

"사실 몇달 내로 일해야 해. 방을 얻어버려서."

라고 덧붙이며.


"혹시라도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떠나게 되면..."

이라는, 안해도 될 말을 해 버렸던 어제.

아마 연세가 있으셔서 아버지보다는 내가 오래 살 거다.


"행복해?"

아버지가 물었다.

그래서 요즘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다.


어제 아버지와 긴 드라이브를 했고, 아버지는 행복해 하셨다.


유방외과 의사는 수슬이 불가능하다고 하며, 더 이상 유방외과에서 치료할 수가 없다고 했다.

피부전이가 되었다고 하며.

하지만, 종양내과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괜찮다고. 똑같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딱히 아픈 데가 없어서 정상인처럼 살고 있다.


"몇 살까지 살고 싶어?"

아버지가 물었다.

"음... 70살?"

이라고 답하자, 아버지는 너무 짧다고 말했다. 더 오래 살라고.

그래서,

"노력해서 80살?"

이라고 말했더니, 90살까지 살라고 하신다.

그래서 90살은 너무 길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나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언제부턴가 죽음이라는 화두로 가끔 이야기를 한다.


"병원에서는 뭐래? 괜찮다고 하지?"

라는 아버지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가,

"괜찮지는 않대. 피부전이가 됐대. 그런데 당장 죽지는 않는대. 오래 살 거니까 걱정마."

라고 답했다.


4년 항암약을 복용하다가 중단하고 나서 1년 후에 다시 나타난 환자를 보고, 의사들은 황당해했지만, 다시 치료를 받기로 했다고 하자 좋아했다.


보름쯤 후에 다시 병원에 간다.

CT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에 진료 시간에 결과를 듣는다.

이번 CT검사 결과에 따라 약을 계속 복용할 수 있을 지, 아니면 복용이 불가능할 지가 결정된다.

중요한 검사라고 종양내과 의사가 강조했다.


피부 전이가 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별다른 증상은 없다.

다만 가끔 허벅지에 약한 멍이 든다는 것 뿐.

허벅지 피부가 약간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다시 자연스럽게 좋아지고 있다.


5년 전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의사는, 의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5년 후 전이 판정을 받고 나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차피 의사가 아는 건 내가 묻지 않아도 먼저 다 말을 해 주니까.


"다음 생에도 아빠 딸로 태어날래."

라고 말하자, 아버지가 좋아하셨다.

"이번 생이 끝나면 엄마, 동생, 우리가족 다 만나자."

라고 말했고, 아버지가 그러자고 하셨다.


어제만큼 아버지와 생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죽음 이야기를 하는 못된 딸... 그게 바로 나다. ㅋ~^^


이젠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그냥 편하게 살거라고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혹시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죽게 되면' 아버지는 어떻게 사셔라, 라는 유언 아닌 유언도 남겼다.

기분이 안 좋으실 수도 있는 말인데도, 딸의 진심이 느껴져서 인지 아버지가 잘 받아들이셨다.


암이라는 건 결국 돈 싸움이다.

그리고 결국은 죽는다.

언제 죽느냐, 얼마나 버티느냐의 차이일 뿐.


나는 쓸 돈도 없고, 돈을 쓰지 말자라는 주의라서, 나 스스로 내 몸을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언젠가 관리가 안되는 날이 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라는 주의이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치료만 받자 주의이고, 의사도 그런 치료만 나에게 권유한다.


생과 사는 정해져 있다.

태어나기 싫다고 세상에 안 태어날 수도 없고, 죽기 싫다고 안 죽을 수도 없다.

태어났으면 언젠가 한번은 죽는다.


아버지가 일어나셨다.

아버지를 좀 챙겨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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