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생전에 와인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헤밍웨이가 가장 좋아했던 와인이라면 역시 샤또 마고를 꼽을 수밖에 없다. 헤밍웨이는 프랑스 여행 중에도 마고 성에 머무르면서 매일같이 미주에 취하곤 했다. 와인에 적당히 취해 하얀 수염을 흩날리던 헤밍웨이를 상상해보라.
그런 헤밍웨이에게는 두 명의 손녀딸이 있었다. 두 손녀 중 한명은 41세의 나이에 약물 중독으로 요절했는데. 그녀의 이름이 바로 마고 헤밍웨이다. 샤또 마고를 너무나 사랑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귀여운 손녀에게 이름으로 선사했던 것이다.
보르도 시에서 포도밭 사이로 펼쳐진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24킬로미터 가량 올라가면 마고 마을이 나온다. 샤또 마고는 이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와인이다. 1855년 그랑 크뤼 분류에서겨우 4개의 와인만이 특등급의 영예를 안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샤또 마고, 마고 마을에서는 유일한 특등급이었고, 당시에는 라피뜨 로쉴드와 라뚜르에 이어 세번째로 랭크되었다. 순서를 매겼지만 그 순서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이들 와인이라면 전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최고 가치를 인정받는 와인들이기 때문이다.
와인 이름을 부를 때는 보통 앞에 놓인 샤또를 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라피뜨 로쉴드,라뚜르 이런 식이다. 하지만 샤또 마고 만큼은 항상 '샤또 마고'라고 부른다. 마고라는 마을 이름과 했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샤또 마고라는 이름이 지닌 영원성 때문일까. 마고라는 이름이 들어간 와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샤또 마고는 단 하나뿐이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마고라는 마을 이름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고급 와인을 구입한 듯한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고급스러운 느낌이 바로 샤또 마고라는 이름으로 인해 묻어나는 것이다. 그 위대함과 기품 어린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항상 '샤또 마고'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샤또 마고, 와인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우아함을 연상하게 된다.
어쩌면 보르도 와인의 상징성을 샤또 마고에서 찾을 수 있다. 샤또 마고는 프랑스인들에게는 부의 상징이요, 명예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이 된 독일은 마고성에서 프랑스에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 장소의 의미란 단순하게 사과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인의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실낙원>에서 샤또 마고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사랑에 빠진 중년의 두 연인은 죽음을 준비한다. 눈 덮인 시골 마을로 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추억이 담긴 음식으로 조촐한 마지막 만찬을 나눈다. 그리고는 독약이 든 샤또 마고를 글라스에 가득 채운다. 진홍빛 와인은 남자의 입술을 타고 여자의 입으로 전해진다. 아름다운 향기와 맛을 느끼며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 그 탐미적인 아름다움에 소름이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