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rases

제목[소설] 이유리, 빨간 열매 : 2020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2025-02-14 15:39
작성자

- 꽃이 시들자 그 자리에는 빨갛고 작은 열매가 맺혔다.


- 나는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했고 P가 열매의 껍데기에 과도를 살짝 갖다 대자마자 잘 익은 그놈은 반으로 쩍 갈라졌는데 새빨간 속살이 꽤나 맛있어 보였다. 나와 P는 각자 한 조각씩을 들고 하나, 둘, 셋에 입에 쏙 집어넣었다. 몰캉몰캉 향긋한 맛에 달콤한 과즙이 풍부해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맛있다, 하는 표정을 교환하며 턱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꿀꺽 삼키자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으깨진 과육의 느낌이 간지러웠고 곧이어 고 빨간 살점이 위장에 퐁당 떨어져 부드럽게 녹아 가는 것까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영업이 끝난 놀이동산처럼 보이는 곳을 뛰어다니며 끝없이 끝없이 굴러가는 빨간 공을 쫓아다니는 꿈이었다. 결국 공을 잡아 주머니에 넣은 순간 잠에서 깼고 아침에 이 꿈 이야기를 하자 P는 어어 그거 태몽 아냐 혹시, 하고 말해서 나는 그런가, 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