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연 단편소설
- 열대에 살면 항상 여름이거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 감각 자체가 아예 없고 다만 건기와 우기가 있을 뿐이래. 춥고 덥고 겨울 가고 여름 오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물을 안 주면 건기가 왔나 보다, 물을 많이 주면 우기가 왔구나, 열대 꽃들은 그걸로 꽃을 피운단다.
아빠에게 치매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이야기고 그 가설의 진위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남들에게 중요한 기준을 공감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진 식물이 있다고, 그래서 한겨울에 붉은 꽃받침이 만개한 위에 조그맣고 하얀 꽃이 피어난다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기준에 맞춰 다른 꽃을 피우며 살아간다고,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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