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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설] 송지현,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 : 2013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2025-03-0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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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산다는 건 어쩌면 더 완벽히 지겨워지기 위한 걸지도 몰라.


- 구조라는 건 일종의 관계라고 생각해. 사람은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거든. 그래서 자꾸 뭔가를 공유하려는 거야. 그것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는 거지. 그럼 그 관계에서 규칙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사실 모두 규칙과 소속을 좋아해. 완전한 자유를 주면 인간은 미쳐. 펑크키드들은 펑크와 아나키즘과 자유에 대한 규칙을 공유했던 거지. 하지만 공유의 대상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바뀌어. 그게 과거와 작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야.


- 물고기는 진화과정에서 전(前) 세대를 멸종시키지 않는다.


-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지, 어떤 것이 사라지고 어떤 것이 생겨나는 건지, 삶의 향방이라는 것이 이렇게 예측가능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나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남아있는지. 주머니를 뒤져 스터트 하나를 꺼내어, 빨대맨이 건넨 빨대에 꽂았다. 나는 그 순간 나의 한 시기가 끝났음을 예감했다. 그래서 그것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펑크록스타일의 빨대를, 빨대맨은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 생겨나는 것들은 무언가를 멸종시켰다. 하지만 무엇이 멸종되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다시는 들여다볼 수 없는 기억의 퇴적층에 묻혀 사라졌다. 나는 역 밖으로 나왔다. 그곳의 창밖으로는 한강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를 고대어 같은 비행기 하나가 낮게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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