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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설] 하가람, 수박 : 2023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2025-03-13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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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의 말대로 유리 조각에는 해가 지는 풍경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저 해는 그림에 불과하므로, 영원히 저물지 않고 저 높이 그대로 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있을 거라고 내가 말했고 초원은 화가는 어느 한순간을 캔버스 위에 븥잡아 놓을 뿐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고, 작품 속의 시간은 나름대로 흘러가는 거라고,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같은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초원의 뒤를 초원은 나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누군가 본다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림 속 해가 산 너머로 숨어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은 흘렀을 테지만 그림 속 해는 아직 지지 않고 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다가오고 멀어져가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수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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