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나는 손에 목장갑을 끼고 철문을 열고 방에 들어갔다. 나는 유품정리사이다. 내가 유품정리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반대했다. 내 뱃속에는 그의 아이가 있다. 엄마는 시계하고도 대화하고, 냄비나 사진하고도 대화한다고 했다. 자주 오라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나온 후 나는 어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낡은 장롱을 닮아갔다. 방바닥에서 어머니는 춤을 췄다. 춤을 왜 그만뒀냐고 내가 묻자 어머니는 춤을 함께 추었던 파트너가 죽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인부들의 손에 들려서 장롱, 소파, 텔레비전, 궤, 냉장고, 세탁기 등이 차례로 방에서 나갔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모두 어머니의 곁을 떠난다고 하며 열한 살의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유독한 말을 퍼부었다. 추운 계절이 지나갈 무렵 그를 만났다. 그는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난생처음 듣던 날 어머니를 떠나왔고, 그의 아이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된 날 그를 떠나왔다. 수거가 거의 다 끝나고 쌓인 먼지들과 자잘한 쓰레기들을 쓸고 닦았다. 어머니의 유품은 수령인이 없었고, 어머니의 얼굴을 본지 아홉 달이 지났다. 어디선가 엠블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일이 끝나고 식사를 하며, 부장님은 산다는 건 기다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고 하며. 나는 오늘 또 누군가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는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았다. 라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2014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달로 간 파이어니어> (이세은 저)가 떠올랐다. 고독사한 사람들의 집을 특수청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달로 간 파이어니어>와 <유품>이라는 소설 속의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는, 고인의 집을 정리하고 청소한다는 면에서는 닮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판이하게 달랐다. <달로 간 파이어니어>에서는 파이어니어 0호와 달 이야기가 중심 제재라고 한다면, 이 소설에서의 중심 제재는 태동을 느끼게 하는 뱃 속의 아이가 아니었나 싶다. 임신 사실을 감추고 유품정리사로 고인의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인’이라는 단어와 ‘임신’ 혹은 ‘태동’이라는 상반된 단어들을 떠올리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삶과 죽음은 각기 다른 정반대의 방향에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희망이 없는 집을 청소하는 나의 희망은 그가 남겨준 뱃 속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그를 떠나보냈던 나의 마음이 느껴졌고, 직업상 매일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을 하는 나이기에 뱃 속의 아이만큼은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나의 마음도 함께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