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진은 옥상 난간 위에 서서 그레타 가르보가 한때 푸브 백화점 잡화코너에서 모자를 팔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첫 면담 때, 상자들이 병원 복도까지 막고 있어서 불편하니 진의 모자를 따로 보관해주겠다는 내 제안에 그는 무조건 싫다는 말만 반복했다. 모자들은 원래 아내의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두 번쨰로 발작이 일어난 날, 그는 병원 뒷마당에서 수위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가 판 구덩이에 경비원이 흙을 메워 넣고 있었다. 경비는 내게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었던 진의 노트를 주었다. 종이에는 달랑 모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아내는 그가 모자의 열쇠를 돌려주지 않자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진은 구덩이에서 올려다보면 동그랗게 잘린 우주의 조각이 보인다고 말했다. 진은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물에 젖어 묵직해진 열쇠를 주며 뒷정리를 해달라고 했다. 진이 사라진 후 나는 클리닉을 그만두었다. 내가 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모자장수라는 것, 그리고 이 년째 연체된 <모자 백과사전>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현관 열쇠까지 포함해서 백 벌의 열쇠들이 내 주머니 속에 있었다. 적당히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의 무늬는 모자를 쓴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남자는 하늘을 걸어다니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검은 모자를 벗어들고 인사를 했다. 그런다음 그는 달의 뒤편, 모든 것이 비롯된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라는 내용이다. 모자에 대한 이야기와 고전시대의 모자의 의미, 진에게 있어서 99개의 모자가 갖는 중요성과 의미, 진에게 있어서 아내가 있었든 없었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모자장수 진에게 팔기에도 아까웠던 99개의 모자가 차지하는 의미, 사라져버린 진이 나에게 남겨주고 간 99개의 모자 상자 열쇠 등에 집중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모자’라는 단 하나의 소재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부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