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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설] 정소현, 양장제본서 전기 : 2008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2025-05-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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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살펴 보면, 

 

나는 시립도서관에 가서 1983년 신문 전부를 열람 신청을 했다. 필름을 돌려주는데 남자가 나눠주는 노란 서류봉투에 합법적으로 사라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무료 서비스라는 제목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리플릿을 가방 속에 구겨 넣었다.

엄마는 거실에 누워 있었다. 엄마는 나를 죽은 이모로 착각했다. 잠 깬 엄마는 부산을 떨며 밥상을 차려왔지만 찌개는 시큼하게 상해 있었다. 엄마는 싱글싱글 웃으며 병에 든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엄마의 손에서 술을 빼앗아 개수대에 부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남아 있는 술을 모두 찾아 꺼내 쏟아부었다.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이후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생활비가 삼분의 일만큼 줄어들어서 나는 처음으로 저축을 시작했다.

내가 돈을 벌자 엄마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엄마가 기억을 잃자 경제적 고통이 사라진 동시에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던 알량한 행복도 함께 사라졌다.

나는 사서에게 82년이나 83년에 있었던 신생아 유기사건을 알고 있는지 물었고, 그녀는 그런 사건은 없었다고 답했다. 엄마는 나에게 출생의 전모를 말해주었고,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울지 않게 되었다.

나는 간단하게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본적지를 찾아가 호적등본을 뗐다. 나는 여전히 아빠의 딸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빠는 동네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찾아가서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내가 아빠의 핏줄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증명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합법적으로 사라지기로 했다. 나는 221번째였고, 여드레째 날의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음식과 음료가 준비되어 있는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선택한 기억의 한 부분은 몸에서 분리되어 깨끗한 붉은 벨벳 표지로 양장제본되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래된 서가와 서가들이 만드는 통로로 둘러싸인 도서관의 구석,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앉았다. 화장실에 들어앉은 것처럼 편안해져 더 이상 알고 싶은 진실 같은 건 없었다.

 

라는 내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했던 아버지와 내 친엄마가 아닌 기억을 잃은 엄마의 자식으로 살아가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고 하고, 엄마도 친엄마가 아니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던 나는 결국 엄마를 포기하고 집을 나와 세상에서 합법적으로 사라지는 방법을 택했다. 나의 기억은 양장제본되어 도서관의 서가에 꽂혀 있고, 나는 화장실에 들어앉은 것처럼 편안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잘 읽혀졌지만, 순간순간 가슴이 아팠다. 아픔이 많은 주인공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하고, 결국 합법적으로 사라지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그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합법적으로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생의 기간동안에는 살아내야 한다. 아직 이 세상에는 합법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또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 허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 그래서 언젠가 이 생의 마지막날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합법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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