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10년 전, 일문학 강의실 뒷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서는 너를 처음 본 순간 ‘사미’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가 20여 년의 그 긴 시간을 넘어 그 모습 그대로 내 강의실로 걸어들어 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소학교부터 고등2학년까지 조총련이 세운 민족학교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며 그가 준 옷을 입고 그가 준 간식을 먹으며 공부했다. 조선적에서 일본적으로 귀화한 다음 전학한 일본인 고등학교와 학위를 받고 나서도 나는 H대학에 대해서만 말했다. 어차피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너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고, 너의 서류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이 너무도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너 역시 곧 떠날 거라고 생각했으나, 너는 떠나지 않았다. 너는 본국으로부터의 송금이 전혀 없이 혼자 일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너는 아기를 가졌다고 했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오빠가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아기를 낳아 키울 생각이 행복했던 너는 그가 부대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나에게 전했다. 나는 너를 산부인과에 데려가 검진을 받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흡연량을 반 이상 줄였고, 서너 캔의 맥주를 향기 좋은 와인 한 잔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아기는 결국 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아기를 낙태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너는 끝까지 영혼은 바다를 건널 수가 없다고 하며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사미도 뱃속에 아기를 품고 목을 맸다. 다행히 사미와 아기의 목숨은 구했지만 그녀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너는 한국의 산부인과 병실은 온돌이라 좋았다고 하며 씩씩했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너는 배가 홀쭉해졌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너는 밤마다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너는 분만대기실에 있을 때 너무 아팠다고 했다. 친구가 나중에 말해줬다고 했다. 나무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다리가 먼저 나왔었다고 했다. 이미 형태는 다 갖추어졌고 가는 핏줄들이 말갛게 비치는 붉은 나무젓가락.... 너는 나에게 다녀오겠다고 한 후 영원히 아기와 남편에게 가 버렸다. 너는 나를 만나러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너는 지금 행복한지 모르겠다. 라는 내용이다. 조총련이 세운 민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조선적에서 일본적으로 귀화한 나는, 사미 이후에 찾아온 너를 만났다. 너도 아기를 가진 상태였고, 남편은 군대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결국 아기가 너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라 낙태시켜야 하는 상황이었고, 너는 한국에 가서 아기를 낙태시키는 수술을 했다. 붉은 나무젓가락같은 아기의 다리가 먼저 나왔었다고 친구에게 들었다고 하던 너는, 결국 아기와 남편이 있는 곳으로 영원히 가 버렸다. 너는 나를 만나러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내내 슬펐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삶, 조총련이 세운 민족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조선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 시대의 역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기와 남편에게 영원히 가 버린 너의 존재도 마음 아팠다. 떠나버린 네가 꿈에 나오지 않아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느껴져서 또 마음이 아팠다. 붉은 나무젓가락 같은 아기의 다리를 친구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너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어 내내 가슴이 아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