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카키색 군복을 입은 병사의 왼쪽 눈엔 송곳 구멍이 뚫려 있다. 그는 오른손에 쥔 걸레로 진열장 유리를 다시 훔쳐나간다. 가게 문을 열고 그는 구석으로 걸어간다. 어제 들어온 상자들이 책상 옆에 잔뜩 쌓여 있다. 진열대를 정리하고 돌아선 그는 전화기를 쳐다본다. 하지만 선뜻 들지 못한다. 두려운 건 여자가 퇴원해버렸다는 말을 듣는 일이다. 임원경. 하루에 열 시간을 비릿한 물 냄새를 맡으며 자동 인형처럼 서 있어야 했고 일 년이 넘게 숙면을 취한 적이 없으며 오래전부터 오른쪽 눈에 비문증을 앓고 있었다. 자신을 빼닮은 인형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여자는 정작 나설 땐 육군 보병 세트와 붓과 도료 그리고 모형용 칼을 챙겼다. 책상 서랍을 뒤져 아트 나이프를 꺼낸다. 수화기를 들고 숫자판을 꾹꾹 누른다. 그러나 병원이라는 말에 덜컥, 내려놓고 만다. 그녀는 두 달 동안 월경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은 지금 고장난 시계 같다고, 며칠 내내 정신없이 잠이 쏟아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날밤을 새운다고도 했다. 욕구들이 사라지고 인형이 되어가는 거라고 했다. 회색 양복을 입은 사내가 조금 전부터 진열장 앞을 서성거린다. 사내는 신용 카드 한 장을 계산대에 내던졌다. 종이 가방 두 개를 양손에 움켜쥔 사내의 어깨가 모퉁이로 사라진다. 삼 년 전이었다고 했다. 백화점 의류 코너에서 일하던 여자는 어느 날 매장 구석의 전신 거울에 스친 얼굴을 목격했다고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자는 자신도 모륵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눈썹을 심고 쌍꺼풀을 만들고 광대뼈를 깎아냈다고 했다. 열 한 번째 수술을 받겠다고 하자 의사 쪽에서 거부하며 조심스레 정신과 진료를 권했다고 했다. 알몸의 천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에 드러누워 있다. 그는 두 손으로 인형의 몸을 쓰다듬는다. 그날 오후, 나무판을 들고 가게로 온 여자는 수족관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두꺼운 아크릴 벽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저렇게 잘 사는 게 신기하다고 하며, 자세히 보면 생긴 게 다 다르다고 여자는 말했다. 그날 저녁, 아트 나이프의 날카로운 끝은 임원경의 얼굴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뜬다. 지루하고도 끔찍한 전쟁은 언제까지든 계속될 것이고 고장난 시계를 품은 여자는 또다시 헤맬지도 모른다. 비치적거리며 그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라는 내용이다. 그는 아트나이프로 임원경을 만든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비극을 두려워하면서도 늘 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좀 더 크고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고, 이를테면 고통을 위로해주는 사건들이 생기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임원경은 소설 속에서 말한다. ‘세상은 쓰고 버릴수록 솟아나는 욕망들로 가득하게 마련이니까.’ 여자는 남자들은 잘못이 없었다고 그녀는 말했고, 그녀도 별달리 잘못 살지는 않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병원으로 전화를 해 보고 싶지만 여자가 퇴원했다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워 결국 병원에 전화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결국 다시 전화해서 면회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그날 저녁, 그는 다시 아트 나이프로 임원경을 만들고 다듬는다. 지루하고 끔찍한 전쟁은 언제까지든 계속될 것이고, 여자는 또다시 헤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는 비치적거리며 출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는 내용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전쟁과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같다. 음울한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편안한 마음으로 한 편의 소설을 읽었다. |